주디 돌로프(Judy Dolhof) 간증
작성자: renwed
작성일: 2015-05-05 16:34
조회: 367
주디 돌로프(Judy Dolhof) 간증
60년대에 태어난 저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제가 흥미를 느끼는 것들은 "왠지 옳지 않은 듯"했기에 심한 가슴앓이를 해야 했습니다. 인형들이란 활력도 없고 지루한 장난감처럼 보였고 소꿉놀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와 가장 친한 친구들은 이웃에 살던 남자아이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온갖 종류의 스포츠를 즐기거나 신나는 "순경 도둑" 놀이를 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저는 요리를 배우거나 학교에서 여자 아이들과 줄넘기를 하는 놀이도 즐겼습니다. "진짜 나는 누굴까?" 저는 궁금해졌습니다. "여자 아이야? 아니면 남자아이야?"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느낌이 때때로 머리 속에 떠올랐지만 저는 그런 생각들을 애써 밀어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기분이 나빠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세 자매 중 막내였습니다. 우리 가족은 꽤 안정적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성장하는 과정에서 저는 제가 언니들과 얼마나 다른 지에 대해 더욱더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언니들은 모두 자신만의 "여성스러움"을 가지고 있었지만, 저는 십대 소녀가 되어 언니들처럼 남자들에 관한 잡지를 읽으며 낄낄거리게 되는 모습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때는 스포츠에 열을 올린다거나 바보 같은 말이나 행동을 한다는 이유로 놀림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또 저는 성장하면서 아버지가 저를 밀어내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는 언니들을 더 좋아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어린 시절을 즐겼으며 야외활동을 하고 활동적인 생활을 좋아했습니다. 때로 제 자신에 대해 나쁜 생각이 들더라도 저는 그런 생각들을 밀어내 버렸습니다.
하지만 이런 혼란스러운 감정들로 인해, 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로 제 주위에 담을 쌓아가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불행히도 그 담은 제가 필요로 했던 사랑을 막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첫 해 동안 저는 같은 학교에 다니던 두 명의 여학생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었고 그 사실 때문에 심한 굴욕감과 함께 묘한 흥분을 느꼈습니다.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두 사람의 무엇인가에 끌리고 있었습니다. 과거에도 여자 영화배우나 저보다 나이가 많은 여성들에게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있지만 당시에는 그런 감정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바로 제 눈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너무도 분명한 매력을 느꼈습니다. 저는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러한 감정에 대한 저의 대응 방법은, 이미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밀어내고 무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심지어 저보다 나이가 많은 여성과 성적인 관계를 맺기까지 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제 자신에 대해 "보다 정상적"으로 반응하고픈 마음이 그런 행동을 한 이유 중 일부였던 것 같습니다.
그 즈음 언니가 『사영리』를 제게 소개해 주었고 제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된 것도 이때쯤이었습니다. 하지만 언니가 대학에 진학하면서 집을 떠나자, 제 주위에는 제가 ‘사영리’의 의미를 이해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제가 알았던 것이라고는 예수님을 제 마음에 들어오시도록 요청하면 예수님은 제게 영생을 약속해 주신다는 것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하더라도 제가 스스로의 성 정체성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 지를 기적적으로 바꾸어 놓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집을 떠나게 된 것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곳에 가면 자유를 누릴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제 자신만의 무의식적인 "세계관"을 발전시켰습니다. "내가 좋은 직업을 가지게 된다면 독립할 수 있을 것이고, 사람들은 내게 상처주지 못 할 거야. 그러면 나는 행복해 지겠지." 이것이 바로 앤디 코미스키가 소위 거짓 자아라고 부르던 상태의 시작이었습니다.
“거짓 자아는 조물주와 단절될 때 나타난다. 피조물이 자신만의 중심을 찾으려는 잘못된 노력을 하는 가운데, 거짓 자아는 홀로 살아갈 수 있는 현실의 중심을 만들어 낸다.” (리빙 워터 가이드북)
대학에서 어떤 여자 아이와 좋은 친구가 되었는데 저는 이 일로 다소 놀랐습니다. 그 아이는 제가 쌓아 놓은 담을 뛰어 넘은 듯이 보였고, 누군가가 저를 "알아 준다"는 느낌은 참으로 좋은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더욱 가까워졌고, 우리의 관계는 성적인 것으로 변했습니다. 저는 그 아이를 좋아했지만 졸업한 이후에는 각자 자신의 길을 가게 되었고, 저도 "행복"해지기 위한 길을 떠났습니다.
그 친구가 너무나 그리웠고, 제 현실이 그리고 직장생활이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에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성공적"인 삶을 살았지만, 꽤 우울한 상태였습니다. 다행히도 저는 직장에서 매우 친절한 젊은 그리스도인 커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저녁식사에 서너 번 초대했고, 우리는 성경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결코 제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 덕택에 저는 다시 하나님과의 진실한 관계를 소원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새로운 도시로 전출되었고, 교회를 찾아가 독신자 모임에 참석했으며 물로 세례도 받았습니다. 거의 정확하게 그때쯤, 저는 직장에서 어떤 여성을 만났는데 그녀는 레즈비언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제가 만난 사람 중 스스로 그 사실을 인정한 사람은 그녀가 처음이었습니다. 우리는 가까워졌고 결국 비밀스러운 성적·감정적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또 다시 저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제 인생을 주께 드렸을 때 저는 제 과거의 모든 것들이 "사라져 버리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일년도 지나지 않아 저는 또 다른 여성을 만났고, 또 다시 비슷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일이 이쯤 되자 저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고, 절망스러웠습니다. 여전히 교회에 나갔지만, 이런 비밀스러운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 시절에 대해 제가 기억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제가 느꼈던 원초적인 감정들 사이의 괴리감이었습니다. 한편으로 저는 함께 한 여성에게 사랑을 느꼈고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저는 마음 속 깊이 예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제 마음의 가장 깊은 곳은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보호의 벽 뒤에 저를 감추고 있었고, 성적인 호감과 행동들에 대한 수치심과 부인의 벽 뒤에 숨어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다른 도시로 옮겨갈 기회가 찾아왔고, 저는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최근에 만난 친구를 떠나는 일이 매우 고통스러웠습니다. 마음으로는 이 관계에서 떠나야 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에 대한 감정이 각별하면 각별할수록 이는 제가 하나님 위에 그녀를 놓고 있다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또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지 못하는 저의 무능력에 실망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번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 순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다시 친구를 사귈 수 있을지 혹은 행복해 질 수 있을지 같은 것은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처음 몇 달 간은 낯선 환경에 둘러 쌓여 울고 또 울며 너무나 큰 슬픔을 느껴야 했습니다. 어느 "우울했던" 순간에는 제가 레즈비언이라는 "공개적인 선언"을 하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저는 하나님은 제가 하는 일에 관심이 없으시다는 말을 믿을 수 없었고, 말씀을 읽으며 알게 된 진리에서 도망갈 수도 없었습니다. 되돌아보면 그 당시야 말로 제 인생에서 반복되던 실패의 패턴을 바꿔 놓을 순종의 커다란 한 발자국을 떼어 놓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감정에 의존하는 대신 진리에 대한 믿음에 의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는 다시 한 번 똑같은 선택을 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는 상관 없어. 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야."
그날 이후로 저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느낄 수 있었고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좀 더 잘 따를 수 있는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변화시키기 위해 사용하신 중요한 부분은 순종 외에도 세 가지가 더 있었습니다. 첫째, 저는 제가 어떻게 느끼고 있느냐에 대해 하나님 앞에 늘 열려 있어야 하며 솔직해야 함을 배웠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제 과거의 여자 친구들과 현재의 슬픔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마음에 다가왔던 말씀 중에 호세아 4장 6절이 있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저는 망해가는 것 같았습니다. 또한 제 인생에 일어난 대부분의 일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또 다른 능력 있는 말씀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습니다.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시편51:6).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중심’에, 제 마음에 다가오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왜 그처럼 느꼈는지 밝히기를 원하셨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부인의 늪을 빠져 나와 다른 여성에게 느꼈던 호감을 하나님께 솔직히 고백하고 성경을 읽는 가운데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느껴졌습니다.
둘째로 저는 말씀을 잘 가르칠 뿐만 아니라 은혜와 자비와 사랑이 넘치는 교회에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과 그분의 말씀을 삶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 지에 관해서도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이것은 삶을 변화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우리 목사님은 아버지와 같은 분이셨고, 비록 설교를 통해서이기는 하지만, 저를 보호해 주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또한 제 인생에는 성 정체성의 문제 말고도 많은 다른 부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러한 사실들을 새로 알게 되는 경험은 정말 좋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정말로 교회 가는 일이 좋았습니다. 과거에는 상상하지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어떻게 편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지를 배워야 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저는 방어막을 치고 사람들의 접근을 막아왔습니다. 그러나 제 안의 내면적 필요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고, 저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다른 여성에게 "찰거머리처럼 달라붙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매우 "실제적인" 다른 그리스도 인 여성들을 만나게 되자 상황은 변했습니다. 특별히 이십대 청년들로 구성되었던 이 그룹은 우리 도시의 동성애자 구역에 나가 자신들의 신앙을 나누었고, 그 다음 날 저녁에는 참여를 희망하는 사람들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성경 공부 모임을 열었습니다. 사실 그 모임에 맨 처음 참석했을 때 저는 매우 걱정스러웠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처음으로 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자존심에 큰 손상을 주는 일이었으며, 평소에 "너는 혼자서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라고 말하던 제 기질에도 손상을 주는 일이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그 그룹에서 좋은 여자 친구를 만난 것입니다. 그 여자 친구는 동성애자는 아니었지만 다른 성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녀에게는 동성애의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고 처음에는 실망했습니다. 저는 그 첫 날 밤 "그녀를 제외"해 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매우 친절했으며 저와의 우정을 계속 유지해갔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둘 다 본질적으로 매우 유사한 문제를 가지고 있음을 알고 놀랐습니다.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으며, 새로운 상황에서는 불안함을 느꼈던 것입니다. 재미있는 일은 우리가 이러한 감정에 반응했던 방식은 너무나 달랐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보다 외향적으로 변해갔고 저는 보다 조용한 사람이 되어갔던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한편 진심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에 대해 솔직해 질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과는 동성간에도 이처럼 풍성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매료되었습니다. 장담하건대 이 관계는 제가 여태까지 다른 여성들과 맺었던 그 어떤 성적인 관계보다 훌륭했습니다. 제가 진정으로 찾고 있었던 것은 가까운 친구였지 애인이 아니었음을 저는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저는 또한 우리 그룹에 참여한 사람들을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사랑했고 따뜻하고 친절하며 다른 사람을 존중했습니다. 순종과 솔직함, 그리고 좋은 친구들을 통해 저는 마침내 어떻게 실제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나가야 할지에 대한 지식으로 무장했습니다. 저는 이제 보다 쉽게 유혹을 거부할 수 있게 되었고 유혹에 무너지기 보다는 유혹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20년 간 저는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계속 성장하는 한편, 서너 개의 전 동성애자 모임에 참여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세월 동안 시험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특별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몇 년 전에는 다른 여성과의 성적인 유혹에 넘어가기도 했습니다. 다행히도 우리 교회에는 리빙 워터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프로그램에서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곳의 소그룹 모임에서 저는 저의 죄와 제가 느꼈던 고통과 제가 경험했던 분노를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었습니다. 소그룹 리더는 정죄하지 않았고 제가 한 일을 판단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리더는 저에게 하나님과 동료들 앞에서 다시 한 번 정직해 질 수 있는 은혜를 주었습니다. 제가 소그룹에서 받은 것은 조언이 아니라 기도였습니다. 그곳에서 제 영혼은 소생되었습니다.
리빙 워터는 성적인 혹은 관계의 온전함으로 가는 길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훌륭한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치유의 여정을 막 시작한 사람을 위한 것이며, 혹은 저처럼 수년간 이 여정을 계속해왔으나 그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날아가 버릴 수 있음"을 알게 된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지금 저는 리빙 워터 지도자 팀에 소속되어 있으며, 팀원들을 통해 그리고 그리스로의 몸 안에서 맺어진 다른 관계들을 통해 끊임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 데저트 스트림
회복을 위한 심리치료가 필요하시다면
전문적으로 성과 동성애 문제를 다루는 "성중독심리연구소" 에 문의 하시기 바랍니다.
TEL: 070-8659-2479 www.sri.or.kr
참조: 웰스프링
60년대에 태어난 저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제가 흥미를 느끼는 것들은 "왠지 옳지 않은 듯"했기에 심한 가슴앓이를 해야 했습니다. 인형들이란 활력도 없고 지루한 장난감처럼 보였고 소꿉놀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와 가장 친한 친구들은 이웃에 살던 남자아이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온갖 종류의 스포츠를 즐기거나 신나는 "순경 도둑" 놀이를 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저는 요리를 배우거나 학교에서 여자 아이들과 줄넘기를 하는 놀이도 즐겼습니다. "진짜 나는 누굴까?" 저는 궁금해졌습니다. "여자 아이야? 아니면 남자아이야?"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느낌이 때때로 머리 속에 떠올랐지만 저는 그런 생각들을 애써 밀어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기분이 나빠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세 자매 중 막내였습니다. 우리 가족은 꽤 안정적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성장하는 과정에서 저는 제가 언니들과 얼마나 다른 지에 대해 더욱더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언니들은 모두 자신만의 "여성스러움"을 가지고 있었지만, 저는 십대 소녀가 되어 언니들처럼 남자들에 관한 잡지를 읽으며 낄낄거리게 되는 모습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때는 스포츠에 열을 올린다거나 바보 같은 말이나 행동을 한다는 이유로 놀림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또 저는 성장하면서 아버지가 저를 밀어내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는 언니들을 더 좋아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어린 시절을 즐겼으며 야외활동을 하고 활동적인 생활을 좋아했습니다. 때로 제 자신에 대해 나쁜 생각이 들더라도 저는 그런 생각들을 밀어내 버렸습니다.
하지만 이런 혼란스러운 감정들로 인해, 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로 제 주위에 담을 쌓아가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불행히도 그 담은 제가 필요로 했던 사랑을 막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첫 해 동안 저는 같은 학교에 다니던 두 명의 여학생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었고 그 사실 때문에 심한 굴욕감과 함께 묘한 흥분을 느꼈습니다.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두 사람의 무엇인가에 끌리고 있었습니다. 과거에도 여자 영화배우나 저보다 나이가 많은 여성들에게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있지만 당시에는 그런 감정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바로 제 눈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너무도 분명한 매력을 느꼈습니다. 저는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러한 감정에 대한 저의 대응 방법은, 이미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밀어내고 무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심지어 저보다 나이가 많은 여성과 성적인 관계를 맺기까지 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제 자신에 대해 "보다 정상적"으로 반응하고픈 마음이 그런 행동을 한 이유 중 일부였던 것 같습니다.
그 즈음 언니가 『사영리』를 제게 소개해 주었고 제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된 것도 이때쯤이었습니다. 하지만 언니가 대학에 진학하면서 집을 떠나자, 제 주위에는 제가 ‘사영리’의 의미를 이해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제가 알았던 것이라고는 예수님을 제 마음에 들어오시도록 요청하면 예수님은 제게 영생을 약속해 주신다는 것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하더라도 제가 스스로의 성 정체성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 지를 기적적으로 바꾸어 놓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집을 떠나게 된 것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곳에 가면 자유를 누릴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제 자신만의 무의식적인 "세계관"을 발전시켰습니다. "내가 좋은 직업을 가지게 된다면 독립할 수 있을 것이고, 사람들은 내게 상처주지 못 할 거야. 그러면 나는 행복해 지겠지." 이것이 바로 앤디 코미스키가 소위 거짓 자아라고 부르던 상태의 시작이었습니다.
“거짓 자아는 조물주와 단절될 때 나타난다. 피조물이 자신만의 중심을 찾으려는 잘못된 노력을 하는 가운데, 거짓 자아는 홀로 살아갈 수 있는 현실의 중심을 만들어 낸다.” (리빙 워터 가이드북)
대학에서 어떤 여자 아이와 좋은 친구가 되었는데 저는 이 일로 다소 놀랐습니다. 그 아이는 제가 쌓아 놓은 담을 뛰어 넘은 듯이 보였고, 누군가가 저를 "알아 준다"는 느낌은 참으로 좋은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더욱 가까워졌고, 우리의 관계는 성적인 것으로 변했습니다. 저는 그 아이를 좋아했지만 졸업한 이후에는 각자 자신의 길을 가게 되었고, 저도 "행복"해지기 위한 길을 떠났습니다.
그 친구가 너무나 그리웠고, 제 현실이 그리고 직장생활이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에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성공적"인 삶을 살았지만, 꽤 우울한 상태였습니다. 다행히도 저는 직장에서 매우 친절한 젊은 그리스도인 커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저녁식사에 서너 번 초대했고, 우리는 성경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결코 제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 덕택에 저는 다시 하나님과의 진실한 관계를 소원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새로운 도시로 전출되었고, 교회를 찾아가 독신자 모임에 참석했으며 물로 세례도 받았습니다. 거의 정확하게 그때쯤, 저는 직장에서 어떤 여성을 만났는데 그녀는 레즈비언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제가 만난 사람 중 스스로 그 사실을 인정한 사람은 그녀가 처음이었습니다. 우리는 가까워졌고 결국 비밀스러운 성적·감정적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또 다시 저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제 인생을 주께 드렸을 때 저는 제 과거의 모든 것들이 "사라져 버리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일년도 지나지 않아 저는 또 다른 여성을 만났고, 또 다시 비슷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일이 이쯤 되자 저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고, 절망스러웠습니다. 여전히 교회에 나갔지만, 이런 비밀스러운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 시절에 대해 제가 기억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제가 느꼈던 원초적인 감정들 사이의 괴리감이었습니다. 한편으로 저는 함께 한 여성에게 사랑을 느꼈고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저는 마음 속 깊이 예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제 마음의 가장 깊은 곳은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보호의 벽 뒤에 저를 감추고 있었고, 성적인 호감과 행동들에 대한 수치심과 부인의 벽 뒤에 숨어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다른 도시로 옮겨갈 기회가 찾아왔고, 저는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최근에 만난 친구를 떠나는 일이 매우 고통스러웠습니다. 마음으로는 이 관계에서 떠나야 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에 대한 감정이 각별하면 각별할수록 이는 제가 하나님 위에 그녀를 놓고 있다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또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지 못하는 저의 무능력에 실망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번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 순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다시 친구를 사귈 수 있을지 혹은 행복해 질 수 있을지 같은 것은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처음 몇 달 간은 낯선 환경에 둘러 쌓여 울고 또 울며 너무나 큰 슬픔을 느껴야 했습니다. 어느 "우울했던" 순간에는 제가 레즈비언이라는 "공개적인 선언"을 하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저는 하나님은 제가 하는 일에 관심이 없으시다는 말을 믿을 수 없었고, 말씀을 읽으며 알게 된 진리에서 도망갈 수도 없었습니다. 되돌아보면 그 당시야 말로 제 인생에서 반복되던 실패의 패턴을 바꿔 놓을 순종의 커다란 한 발자국을 떼어 놓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감정에 의존하는 대신 진리에 대한 믿음에 의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는 다시 한 번 똑같은 선택을 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는 상관 없어. 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야."
그날 이후로 저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느낄 수 있었고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좀 더 잘 따를 수 있는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변화시키기 위해 사용하신 중요한 부분은 순종 외에도 세 가지가 더 있었습니다. 첫째, 저는 제가 어떻게 느끼고 있느냐에 대해 하나님 앞에 늘 열려 있어야 하며 솔직해야 함을 배웠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제 과거의 여자 친구들과 현재의 슬픔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마음에 다가왔던 말씀 중에 호세아 4장 6절이 있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저는 망해가는 것 같았습니다. 또한 제 인생에 일어난 대부분의 일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또 다른 능력 있는 말씀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습니다.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시편51:6).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중심’에, 제 마음에 다가오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왜 그처럼 느꼈는지 밝히기를 원하셨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부인의 늪을 빠져 나와 다른 여성에게 느꼈던 호감을 하나님께 솔직히 고백하고 성경을 읽는 가운데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느껴졌습니다.
둘째로 저는 말씀을 잘 가르칠 뿐만 아니라 은혜와 자비와 사랑이 넘치는 교회에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과 그분의 말씀을 삶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 지에 관해서도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이것은 삶을 변화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우리 목사님은 아버지와 같은 분이셨고, 비록 설교를 통해서이기는 하지만, 저를 보호해 주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또한 제 인생에는 성 정체성의 문제 말고도 많은 다른 부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러한 사실들을 새로 알게 되는 경험은 정말 좋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정말로 교회 가는 일이 좋았습니다. 과거에는 상상하지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어떻게 편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지를 배워야 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저는 방어막을 치고 사람들의 접근을 막아왔습니다. 그러나 제 안의 내면적 필요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고, 저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다른 여성에게 "찰거머리처럼 달라붙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매우 "실제적인" 다른 그리스도 인 여성들을 만나게 되자 상황은 변했습니다. 특별히 이십대 청년들로 구성되었던 이 그룹은 우리 도시의 동성애자 구역에 나가 자신들의 신앙을 나누었고, 그 다음 날 저녁에는 참여를 희망하는 사람들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성경 공부 모임을 열었습니다. 사실 그 모임에 맨 처음 참석했을 때 저는 매우 걱정스러웠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처음으로 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자존심에 큰 손상을 주는 일이었으며, 평소에 "너는 혼자서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라고 말하던 제 기질에도 손상을 주는 일이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그 그룹에서 좋은 여자 친구를 만난 것입니다. 그 여자 친구는 동성애자는 아니었지만 다른 성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녀에게는 동성애의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고 처음에는 실망했습니다. 저는 그 첫 날 밤 "그녀를 제외"해 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매우 친절했으며 저와의 우정을 계속 유지해갔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둘 다 본질적으로 매우 유사한 문제를 가지고 있음을 알고 놀랐습니다.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으며, 새로운 상황에서는 불안함을 느꼈던 것입니다. 재미있는 일은 우리가 이러한 감정에 반응했던 방식은 너무나 달랐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보다 외향적으로 변해갔고 저는 보다 조용한 사람이 되어갔던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한편 진심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에 대해 솔직해 질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과는 동성간에도 이처럼 풍성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매료되었습니다. 장담하건대 이 관계는 제가 여태까지 다른 여성들과 맺었던 그 어떤 성적인 관계보다 훌륭했습니다. 제가 진정으로 찾고 있었던 것은 가까운 친구였지 애인이 아니었음을 저는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저는 또한 우리 그룹에 참여한 사람들을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사랑했고 따뜻하고 친절하며 다른 사람을 존중했습니다. 순종과 솔직함, 그리고 좋은 친구들을 통해 저는 마침내 어떻게 실제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나가야 할지에 대한 지식으로 무장했습니다. 저는 이제 보다 쉽게 유혹을 거부할 수 있게 되었고 유혹에 무너지기 보다는 유혹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20년 간 저는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계속 성장하는 한편, 서너 개의 전 동성애자 모임에 참여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세월 동안 시험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특별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몇 년 전에는 다른 여성과의 성적인 유혹에 넘어가기도 했습니다. 다행히도 우리 교회에는 리빙 워터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프로그램에서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곳의 소그룹 모임에서 저는 저의 죄와 제가 느꼈던 고통과 제가 경험했던 분노를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었습니다. 소그룹 리더는 정죄하지 않았고 제가 한 일을 판단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리더는 저에게 하나님과 동료들 앞에서 다시 한 번 정직해 질 수 있는 은혜를 주었습니다. 제가 소그룹에서 받은 것은 조언이 아니라 기도였습니다. 그곳에서 제 영혼은 소생되었습니다.
리빙 워터는 성적인 혹은 관계의 온전함으로 가는 길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훌륭한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치유의 여정을 막 시작한 사람을 위한 것이며, 혹은 저처럼 수년간 이 여정을 계속해왔으나 그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날아가 버릴 수 있음"을 알게 된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지금 저는 리빙 워터 지도자 팀에 소속되어 있으며, 팀원들을 통해 그리고 그리스로의 몸 안에서 맺어진 다른 관계들을 통해 끊임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 데저트 스트림
회복을 위한 심리치료가 필요하시다면
전문적으로 성과 동성애 문제를 다루는 "성중독심리연구소" 에 문의 하시기 바랍니다.
TEL: 070-8659-2479 www.sri.or.kr
참조: 웰스프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