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건 데이비스(Morgan Davis) 간증
작성자: renwed
작성일: 2015-05-05 16:35
조회: 330
모건 데이비스(Morgan Davis) 간증
동성애에서 해방되는 일은 가능합니다. 제 삶이 이 사실을 증명합니다.
제 기억이 닿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저는 다른 남자 아이들을 우상화해 왔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아이들이 집단에 잘 적응하거나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을 한 것을 매우 동경했습니다. 저는 제가 아웃사이더라고 생각했고, 스스로 "다른 사람"이라는 낙인을 받아들였습니다. 다는 남자도 소년도 아닌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제 자신을 여성으로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제가 다른 남자아이들과는 어쩐지 조금 다른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수 년이 지나면서 제 성 정체성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성적인 것으로 변했습니다. 제 또래의 다른 남자 아이들과 가까운 관계를 형성하고 싶은 필요는 자연스러운 발달 과정의 일부였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라는 수치심이 늘 제 발목을 잡았습니다. 동떨어진 듯한 저의 태도는 제게 더 많은 수치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또래 아이들이 제가 자기들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면서 더 많은 낙인과 놀림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제 안의 수치심은 커져갔고 고립감도 심해졌습니다. 저는 어떻게든 다른 아이들과 어울릴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고등 학생이 된 저는 사회적으로 잘 적응 했습니다. 제 안의 자기 혐오와 수치심을 다룰 방법도 직관적으로 찾아 갔습니다. 저는 제가 생각하기에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여 줄 것 같은 모습으로 제 자신을 바꾸어 갔습니다. 작가 앤디 코미스키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수치심은 우리 자신의 모습을 숨기도록 만든다.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자아에 심각한 결핍이 있으며 이러한 결핍을 감춰야만 한다고 생각하여, 거짓된 선함의 합판 뒤에 숨기려 한다. 이 거짓 자아를 유지하는 데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며, 존경과 공감과 사랑 받고 있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며, 그들의 비위를 맞추려는 일단의 행동들을 고안해 내게 된다. 영속적으로 운영되는 이 연막에 담긴 문제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진정한 필요를 채워 줄 수 없다는 데 있다. 우리는 진정한 자아 안에 그와 같은 필요가 존재한다는 믿음을 즉각적이고 암묵적으로 거부하며, 그러한 믿음에서 스스로를 단절시킨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이러한 필요의 부분들은 감히 손대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럽게 변하게 된다. 치료의 고통이 두려워 몸 안에서 커지고 있는 암을 모르는 척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치유하지 않고 남겨 둘 경우, 그 부분에서 만들어진 수치심이 당신을 옥죄어 올 것이다."
저는 이와 같은 내면의 혼란에서 "탈출"하고 싶은 소망을 가지고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여자들과 데이트를 했지만, 제가 그 관계 속에서 여성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매우 적었습니다. 저의 본심은 특별한 남자 친구를 만드는 데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이러한 관계는 감정적으로 매우 의존적이고 종국에는 성적인 것으로 변했습니다. 그런 상황에 겁을 집어먹은 저는 서둘러 관계를 끝내고 수치심을 느끼며 모든 사실을 은폐하려 했습니다. 저의 성 정체성과 동성애적 감정을 아무에게도 고백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중적인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겉으로는 가족과 친구들을 기쁘게 할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아무도 알지 못하도록 다른 남성들과의 감정 의존적이고 성적인 관계를 유지해 나갔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제 안의 내적인 필요는 오직 부정한 성행위로만 만족시킬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기분 좋은 느낌이 용솟음 쳐 온다거나 성적으로 타인이 저를 원할 때의 기쁨에 빠르게 중독되었습니다. 이런 식의 삶이 5년 정도 지속되었습니다.
대학을 떠난 후 하나님께서 저에게 신뢰할 만한 친구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친구의 연약함과 솔직함이 제 마음에 겹겹이 쌓여 있던 수치심과 방어 심리를 뚫고 들어왔습니다. 어느 날 그는 제게 제가 스스로를 게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제 낯빛은 핏기 없이 변해 버렸고 그도 자신이 얼마나 중대한 질문을 던졌는지 알고 있는 듯 했습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진실함을 믿었기에 저는 그 앞에서 솔직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저를 새로운 희망의 방향으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저는 상담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상담은 약 육 개월간 계속되었습니다. 괄목할 만한 성과가 나타났고 저는 그리스도와의 친밀감을 경험했습니다. 카운슬러는 우리 가정에 큰 상처가 있다는 것을 통찰해 냈습니다. 아버지와 물리적으로 한 공간에 있었다 하더라도 저는 그와 감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었고, 그 때문에 저는 아버지의 아들로서 수치심과 버림받았다는 깊은 상처를 얻게 된 것입니다. 어머니와 저를 동일시 하는 것이 제 유일한 감정의 배출구였고, 결국 남성으로서의 정체성에 혼란이 초래된 것입니다. 저는 저를 어머니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이 모든 혼란과 속임수를 이해할 수 있게 되자 저는 변화를 향한 새로운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조용하게 치유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캐런과 저는 2년 후에 결혼했습니다. 약혼을 했던 당시에 저는 간단하게나마 과거의 동성애 문제와 실패들에 관해 캐런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여전히 깊은 수치심에 쌓여 있던 저는 과거에 대해 이야기할 능력도 의지도 없었습니다. 저는 캐런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저 모든 일이 잘 풀리기만을 소망하며 과거의 모든 일이 완전히 우리의 과거 속에서 사라지기를 혹은 제 과거 속에서 사라지기를 바라며, 결혼식장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결혼 생활로 인한 여러 스트레스들은 지극히 불안정하던 제 마음을 들썩였습니다. 저는 남편으로서 그리고 남자로서 뭔가 결핍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캐런과 진정으로 친밀해 지는 것이 두려웠던 저는 고통을 경감시켜 줄 다른 것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결혼 첫 해에 동성과의 부정한 관계를 시작했고 다른 남성들과도 동성애적인 행동을 했습니다. 중독은 그 후 6년 간 계속되었습니다. 저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고, 수치심 때문에라도 제 죄를 고백할 수 없었습니다. 캐런이나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저의 새로운 이중 생활은 정당화 될 수 있었습니다. 최소한 제 자신에게는 그랬습니다. 과거의 제 모습을 생각해 볼 때 저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그런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죄를 씻을 많은 방법들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그 첫째는 청소년들을 위한 외부 사역에 전임 봉사자로 참여하는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가정을 갖는 일이었습니다. 겉 모습이라도 건강하게 보이자는 것이 저의 목적이었습니다. 수 년이 지났고 저는 마침내 이런 식의 파괴적인 행동을 멈출 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결심만 한다면 한 순간에 모든 것들을 제자리로 돌려 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에서 그나마 마음의 위안을 조금이라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모든 사실이 폭로되거나 밝혀지기 전에 한 발짝만 먼저 움직일 수 있다면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마음속에서 정죄하는 목소리가 들려와 수치심과 죄의식이 쌓여 갈 때마다, 저는 우울증이나 자살충동과 싸워야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부르짖고 또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하나님을 신뢰할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무기력과 죄 가운데로 다시 빠져들었습니다. 제가 느끼는 감정은 오직 외로움뿐이었습니다. 마음속의 저주가 이제는 저의 동반자가 되었고 저는 저 혼자 이 모든 것들을 감당해 내야 한다고 진심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더 오랜 세월을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계속해서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하는 말이지만, 이러한 혼란의 와중에서도 하나님은 분명히 함께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둘째 아이가 생길 때쯤 제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관여하던 사역의 대상이 "도시"에 맞춰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저는 도심 사역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가난해 보이는 아이들을 제 손으로 돌보는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저의 이해도 커지게 되었고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보면서 제게도 소망이 생겼습니다. 이들과 저의 우정은 더욱 깊어졌고 더욱 진실되어 졌습니다. 한편으로는 두려웠지만, 그들에게 저를 알리고 받아들여 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봉사하는 동료들과 함께 어울리는 가운데, 그들에게는 제가 처한 곤란을 이야기 해도 좋으리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천천히 저는 신뢰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과 캐런을 신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제 마음의 상처는 점점 강렬해졌고 저는 이런 마음의 고통과 혼란을 달래기 위해 조금 더 과감하게 하나님께 다가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하나님 앞에 마음을 열려 할 때면 언제나 원수의 더 큰 방해가 저를 공격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은 저는 크게 감화되었고 예수님이 제게도 다가오실 지 모른다는 실낱 같은 희망을 가졌습니다.
1995년 여름 제 기도 생활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예전에는 "제 인생에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주님." 혹은 "내 마음에 필요한 것은 그 무엇이든 하십시오, 예수님." 같은 기도를 드려본 일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기도가 또 한번 저를 두렵게 했습니다. 이런 기도는 큰 희생을 감당해야 할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치러야 할 희생보다는 제 인생과 결혼 생활이 훨씬 더 가치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간절히 필요했습니다.
가을에 저는 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첫 학기의 주요 주제는 "공동체"였습니다. 필수 서적 중에는 디트리히 본훼퍼(Dietrich Bonhoeffer)의 책 『공동생활 Life Together』도 있었습니다. 이 책을 다 읽어야 했기 때문에 저는 캐런에게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겠노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저는 "데이트"를 즐기려던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죄악 되고 위험 천만한 행동을 하면서 저는 두려워졌습니다. 한순간 제 눈이 열렸고, 나사가 풀어진 듯 통제 불능이 되어 고통과 외로움을 달래고자 또 다른 수준의 깊이로 추락하고 있는 제 자신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제 영은 주님께서 저를 부르고 계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뭔가가 달라져 있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마치 하나님의 목소리를 실제로 들은 것만 같았습니다. "이제 도망을 좀 멈추겠니?" 그날 저녁 저는 커피숍에 가서 본훼퍼의 책을 꺼내 들었습니다. 마지막 장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죄로 단절되어 있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으로 외로운 사람이다." 그 책을 읽는 내내 많은 눈물을 쏟았습니다. 이때만큼 외롭게 느껴진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글은 계속되었습니다. "죄는 한 인간을 독차지 하려 든다. 죄는 그를 공동체에서 끌어낸다. 한 인간이 고립되면 될수록 그를 향한 죄의 영향력도 파괴적이 되어갈 것이다." 이 장은 그 후 고백의 필요성과 능력에 대해 밝혔습니다. 이러한 진리를 전에는 결코 들어본 일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제 영혼은 다시 한 번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제 숨는 것을 멈추겠니?"
하나님의 은혜로 저는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저의 죄와 상한 마음을 그에게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저와 함께 해주셨습니다. 그 친구는 캐런에게 이야기 하라고 격려해 주었고 다음 날 저는 그녀에게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은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캐런 앞에 제 자신을 다 드러내면서 그럴듯하고 완벽해 보이던 제 이미지는 모두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이 우리 주위에 몰려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의 안내로 도움을 얻기 위해 데저트 스트림(Desert Stream)에 찾아갔습니다. 저는 그런 단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사실 저는 예전에도 치유의 길에 들어섰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저 혼자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습니다. 캐런과 저를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우리의 공동체를 통해 분명히 보여졌습니다. 우리는 사랑과 지지를 받고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상한 마음과 죄를 이해해 주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 앞에 놓여 있는 혼란과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동성적인 호감에 대한 실체를 아는 일이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저는 이제 그 속에 숨겨진 상처와 고통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제 영혼의 치유를 가능케 한 것은 예수를 아는 지식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제 인생의 중심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세웠습니다. 이는 오직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을 통해서만 하나님은 자신이 기뻐하시는 자들을 일으키실 수 있음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경험하는 일은 고백에서 시작됩니다. 죄와 수치심에 대한 죽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어진 것만을 죽음에서 되살리실 수 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죽으라고 명령합니다. 우리가 짓고 있는 죄에 대하여 우리가 창조한 겉 모습에 대하여 죽으라고 말합니다. 본훼퍼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과 회복을 경험한다. 옛 사람은 죽었다. 그러나 그 옛 사람을 정복하신 분은 하나님이다. 이제 우리도 그리스도의 부활과 새로운 삶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 아이를 축복으로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네 명이 되었습니다. 캐런과 저는 현재 관계와 성문제가 치유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하며 함께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그리스도께서 이제 아버지와 함께 보좌에 앉으셨으니…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모든 허기지고 목마른 사람들에게 흘려 보내시리라 "고 했습니다. 또 에스겔은 "이 강이 흐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진리가 오직 십자가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항상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데저트 스트림
회복을 위한 심리치료가 필요하시다면
전문적으로 성과 동성애 문제를 다루는 "성중독심리연구소" 에 문의 하시기 바랍니다.
TEL: 070-8659-2479 www.sri.or.kr
참조: 웰스프링
동성애에서 해방되는 일은 가능합니다. 제 삶이 이 사실을 증명합니다.
제 기억이 닿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저는 다른 남자 아이들을 우상화해 왔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아이들이 집단에 잘 적응하거나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을 한 것을 매우 동경했습니다. 저는 제가 아웃사이더라고 생각했고, 스스로 "다른 사람"이라는 낙인을 받아들였습니다. 다는 남자도 소년도 아닌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제 자신을 여성으로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제가 다른 남자아이들과는 어쩐지 조금 다른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수 년이 지나면서 제 성 정체성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성적인 것으로 변했습니다. 제 또래의 다른 남자 아이들과 가까운 관계를 형성하고 싶은 필요는 자연스러운 발달 과정의 일부였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라는 수치심이 늘 제 발목을 잡았습니다. 동떨어진 듯한 저의 태도는 제게 더 많은 수치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또래 아이들이 제가 자기들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면서 더 많은 낙인과 놀림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제 안의 수치심은 커져갔고 고립감도 심해졌습니다. 저는 어떻게든 다른 아이들과 어울릴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고등 학생이 된 저는 사회적으로 잘 적응 했습니다. 제 안의 자기 혐오와 수치심을 다룰 방법도 직관적으로 찾아 갔습니다. 저는 제가 생각하기에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여 줄 것 같은 모습으로 제 자신을 바꾸어 갔습니다. 작가 앤디 코미스키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수치심은 우리 자신의 모습을 숨기도록 만든다.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자아에 심각한 결핍이 있으며 이러한 결핍을 감춰야만 한다고 생각하여, 거짓된 선함의 합판 뒤에 숨기려 한다. 이 거짓 자아를 유지하는 데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며, 존경과 공감과 사랑 받고 있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며, 그들의 비위를 맞추려는 일단의 행동들을 고안해 내게 된다. 영속적으로 운영되는 이 연막에 담긴 문제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진정한 필요를 채워 줄 수 없다는 데 있다. 우리는 진정한 자아 안에 그와 같은 필요가 존재한다는 믿음을 즉각적이고 암묵적으로 거부하며, 그러한 믿음에서 스스로를 단절시킨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이러한 필요의 부분들은 감히 손대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럽게 변하게 된다. 치료의 고통이 두려워 몸 안에서 커지고 있는 암을 모르는 척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치유하지 않고 남겨 둘 경우, 그 부분에서 만들어진 수치심이 당신을 옥죄어 올 것이다."
저는 이와 같은 내면의 혼란에서 "탈출"하고 싶은 소망을 가지고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여자들과 데이트를 했지만, 제가 그 관계 속에서 여성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매우 적었습니다. 저의 본심은 특별한 남자 친구를 만드는 데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이러한 관계는 감정적으로 매우 의존적이고 종국에는 성적인 것으로 변했습니다. 그런 상황에 겁을 집어먹은 저는 서둘러 관계를 끝내고 수치심을 느끼며 모든 사실을 은폐하려 했습니다. 저의 성 정체성과 동성애적 감정을 아무에게도 고백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중적인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겉으로는 가족과 친구들을 기쁘게 할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아무도 알지 못하도록 다른 남성들과의 감정 의존적이고 성적인 관계를 유지해 나갔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제 안의 내적인 필요는 오직 부정한 성행위로만 만족시킬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기분 좋은 느낌이 용솟음 쳐 온다거나 성적으로 타인이 저를 원할 때의 기쁨에 빠르게 중독되었습니다. 이런 식의 삶이 5년 정도 지속되었습니다.
대학을 떠난 후 하나님께서 저에게 신뢰할 만한 친구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친구의 연약함과 솔직함이 제 마음에 겹겹이 쌓여 있던 수치심과 방어 심리를 뚫고 들어왔습니다. 어느 날 그는 제게 제가 스스로를 게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제 낯빛은 핏기 없이 변해 버렸고 그도 자신이 얼마나 중대한 질문을 던졌는지 알고 있는 듯 했습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진실함을 믿었기에 저는 그 앞에서 솔직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저를 새로운 희망의 방향으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저는 상담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상담은 약 육 개월간 계속되었습니다. 괄목할 만한 성과가 나타났고 저는 그리스도와의 친밀감을 경험했습니다. 카운슬러는 우리 가정에 큰 상처가 있다는 것을 통찰해 냈습니다. 아버지와 물리적으로 한 공간에 있었다 하더라도 저는 그와 감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었고, 그 때문에 저는 아버지의 아들로서 수치심과 버림받았다는 깊은 상처를 얻게 된 것입니다. 어머니와 저를 동일시 하는 것이 제 유일한 감정의 배출구였고, 결국 남성으로서의 정체성에 혼란이 초래된 것입니다. 저는 저를 어머니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이 모든 혼란과 속임수를 이해할 수 있게 되자 저는 변화를 향한 새로운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조용하게 치유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캐런과 저는 2년 후에 결혼했습니다. 약혼을 했던 당시에 저는 간단하게나마 과거의 동성애 문제와 실패들에 관해 캐런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여전히 깊은 수치심에 쌓여 있던 저는 과거에 대해 이야기할 능력도 의지도 없었습니다. 저는 캐런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저 모든 일이 잘 풀리기만을 소망하며 과거의 모든 일이 완전히 우리의 과거 속에서 사라지기를 혹은 제 과거 속에서 사라지기를 바라며, 결혼식장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결혼 생활로 인한 여러 스트레스들은 지극히 불안정하던 제 마음을 들썩였습니다. 저는 남편으로서 그리고 남자로서 뭔가 결핍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캐런과 진정으로 친밀해 지는 것이 두려웠던 저는 고통을 경감시켜 줄 다른 것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결혼 첫 해에 동성과의 부정한 관계를 시작했고 다른 남성들과도 동성애적인 행동을 했습니다. 중독은 그 후 6년 간 계속되었습니다. 저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고, 수치심 때문에라도 제 죄를 고백할 수 없었습니다. 캐런이나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저의 새로운 이중 생활은 정당화 될 수 있었습니다. 최소한 제 자신에게는 그랬습니다. 과거의 제 모습을 생각해 볼 때 저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그런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죄를 씻을 많은 방법들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그 첫째는 청소년들을 위한 외부 사역에 전임 봉사자로 참여하는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가정을 갖는 일이었습니다. 겉 모습이라도 건강하게 보이자는 것이 저의 목적이었습니다. 수 년이 지났고 저는 마침내 이런 식의 파괴적인 행동을 멈출 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결심만 한다면 한 순간에 모든 것들을 제자리로 돌려 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에서 그나마 마음의 위안을 조금이라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모든 사실이 폭로되거나 밝혀지기 전에 한 발짝만 먼저 움직일 수 있다면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마음속에서 정죄하는 목소리가 들려와 수치심과 죄의식이 쌓여 갈 때마다, 저는 우울증이나 자살충동과 싸워야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부르짖고 또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하나님을 신뢰할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무기력과 죄 가운데로 다시 빠져들었습니다. 제가 느끼는 감정은 오직 외로움뿐이었습니다. 마음속의 저주가 이제는 저의 동반자가 되었고 저는 저 혼자 이 모든 것들을 감당해 내야 한다고 진심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더 오랜 세월을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계속해서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하는 말이지만, 이러한 혼란의 와중에서도 하나님은 분명히 함께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둘째 아이가 생길 때쯤 제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관여하던 사역의 대상이 "도시"에 맞춰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저는 도심 사역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가난해 보이는 아이들을 제 손으로 돌보는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저의 이해도 커지게 되었고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보면서 제게도 소망이 생겼습니다. 이들과 저의 우정은 더욱 깊어졌고 더욱 진실되어 졌습니다. 한편으로는 두려웠지만, 그들에게 저를 알리고 받아들여 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봉사하는 동료들과 함께 어울리는 가운데, 그들에게는 제가 처한 곤란을 이야기 해도 좋으리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천천히 저는 신뢰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과 캐런을 신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제 마음의 상처는 점점 강렬해졌고 저는 이런 마음의 고통과 혼란을 달래기 위해 조금 더 과감하게 하나님께 다가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하나님 앞에 마음을 열려 할 때면 언제나 원수의 더 큰 방해가 저를 공격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은 저는 크게 감화되었고 예수님이 제게도 다가오실 지 모른다는 실낱 같은 희망을 가졌습니다.
1995년 여름 제 기도 생활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예전에는 "제 인생에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주님." 혹은 "내 마음에 필요한 것은 그 무엇이든 하십시오, 예수님." 같은 기도를 드려본 일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기도가 또 한번 저를 두렵게 했습니다. 이런 기도는 큰 희생을 감당해야 할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치러야 할 희생보다는 제 인생과 결혼 생활이 훨씬 더 가치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간절히 필요했습니다.
가을에 저는 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첫 학기의 주요 주제는 "공동체"였습니다. 필수 서적 중에는 디트리히 본훼퍼(Dietrich Bonhoeffer)의 책 『공동생활 Life Together』도 있었습니다. 이 책을 다 읽어야 했기 때문에 저는 캐런에게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겠노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저는 "데이트"를 즐기려던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죄악 되고 위험 천만한 행동을 하면서 저는 두려워졌습니다. 한순간 제 눈이 열렸고, 나사가 풀어진 듯 통제 불능이 되어 고통과 외로움을 달래고자 또 다른 수준의 깊이로 추락하고 있는 제 자신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제 영은 주님께서 저를 부르고 계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뭔가가 달라져 있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마치 하나님의 목소리를 실제로 들은 것만 같았습니다. "이제 도망을 좀 멈추겠니?" 그날 저녁 저는 커피숍에 가서 본훼퍼의 책을 꺼내 들었습니다. 마지막 장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죄로 단절되어 있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으로 외로운 사람이다." 그 책을 읽는 내내 많은 눈물을 쏟았습니다. 이때만큼 외롭게 느껴진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글은 계속되었습니다. "죄는 한 인간을 독차지 하려 든다. 죄는 그를 공동체에서 끌어낸다. 한 인간이 고립되면 될수록 그를 향한 죄의 영향력도 파괴적이 되어갈 것이다." 이 장은 그 후 고백의 필요성과 능력에 대해 밝혔습니다. 이러한 진리를 전에는 결코 들어본 일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제 영혼은 다시 한 번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제 숨는 것을 멈추겠니?"
하나님의 은혜로 저는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저의 죄와 상한 마음을 그에게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저와 함께 해주셨습니다. 그 친구는 캐런에게 이야기 하라고 격려해 주었고 다음 날 저는 그녀에게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은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캐런 앞에 제 자신을 다 드러내면서 그럴듯하고 완벽해 보이던 제 이미지는 모두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이 우리 주위에 몰려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의 안내로 도움을 얻기 위해 데저트 스트림(Desert Stream)에 찾아갔습니다. 저는 그런 단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사실 저는 예전에도 치유의 길에 들어섰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저 혼자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습니다. 캐런과 저를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우리의 공동체를 통해 분명히 보여졌습니다. 우리는 사랑과 지지를 받고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상한 마음과 죄를 이해해 주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 앞에 놓여 있는 혼란과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동성적인 호감에 대한 실체를 아는 일이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저는 이제 그 속에 숨겨진 상처와 고통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제 영혼의 치유를 가능케 한 것은 예수를 아는 지식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제 인생의 중심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세웠습니다. 이는 오직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을 통해서만 하나님은 자신이 기뻐하시는 자들을 일으키실 수 있음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경험하는 일은 고백에서 시작됩니다. 죄와 수치심에 대한 죽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어진 것만을 죽음에서 되살리실 수 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죽으라고 명령합니다. 우리가 짓고 있는 죄에 대하여 우리가 창조한 겉 모습에 대하여 죽으라고 말합니다. 본훼퍼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과 회복을 경험한다. 옛 사람은 죽었다. 그러나 그 옛 사람을 정복하신 분은 하나님이다. 이제 우리도 그리스도의 부활과 새로운 삶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 아이를 축복으로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네 명이 되었습니다. 캐런과 저는 현재 관계와 성문제가 치유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하며 함께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그리스도께서 이제 아버지와 함께 보좌에 앉으셨으니…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모든 허기지고 목마른 사람들에게 흘려 보내시리라 "고 했습니다. 또 에스겔은 "이 강이 흐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진리가 오직 십자가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항상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데저트 스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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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웰스프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