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리사 조 "MJ" 윌슨 (Melissa Jo "MJ" Wilson) 간증
작성자: renwed
작성일: 2015-05-05 16:33
조회: 378
멜리사 조 "MJ" 윌슨 (Melissa Jo "MJ" Wilson) 간증
놀라운 사랑
다섯 살 때 저는 트리니티 웨슬리안 교회 주일학교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죄를 사하여 주시도록 요청했습니다. 그 후로 우리 교회는 곧 저의 "가족"이나 다름 없었고, 제가 성장하는 내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 주었습니다. 교회 사람들은 제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었으며, 당시에 배웠던 말씀이 제 마음에 단단한 기초를 형성했습니다. 이때 형성된 기초야말로 제 삶의 진리를 세우는 본질적인 원천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동성애 문제에 직면했던 당시에도 저는 제 삶이 하나님의 의지와는 반대된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삶의 방식이 저의 허기진 마음에 매우 적절하고 순수하게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저는 당시의 삶이 죄인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예레미야 17:9).
저는 학대가 밥 먹듯 자연스러웠던 역기능 가정에서 성장했습니다. 어머니는 다섯 번이나 재혼을 하셨고, 새 아버지(새 남편)들이 우리 인생에 끼어들 때 마다, 그들은 우리에게 고통을 주고 떠나버렸습니다. 이러한 삶의 결과로 저는 어린 나이에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 대해 마음 깊숙이 몇 가지 결심을 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남자들이 제 어머니에게 했던 것처럼 저를 이용하거나 상처를 주지 못하게 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남자들과 어머니에게서 감정적으로 거리를 두며 무의식적으로 멀어졌던 것도 이 때 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어머니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했던 것은 어머니는 언제나 저의 감정적 필요 보다는 자신과 자녀들을 학대했던 아버지의 필요를 더 중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적인 학대를 경험하면서 저는 남자에 대해서도 마음으로 굳은 결심을 했습니다. "남자가 여자에게 원하는 것은 다만 성관계일 뿐이야. 남자들은 나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 지금은 이러한 말들이 비이성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상처 받고, 혼란스러웠던 아이의 어린 사고와 마음에는 너무나 당연한 말이었습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이러한 것들이 남자에 대한 저의 경험이자 현실이었습니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경험 때문에 불행히도 저는 매우 어린 나이에 감정적인 성숙을 멈추었습니다. 부모님은 저의 정당한 필요를 채워 주지 못하셨고, 저의 감정 발달은 초기에 성장을 멈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기본적인 신뢰와 안정감, 안전성과 사랑에 대한 필요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트리니티 웨슬리안 교회에 다니게 된 것은 매우 행운이었습니다. 이 교회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했고 하나님을 삶의 최우선으로 두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나눠 주었고 마치 자신의 가족처럼 저를 아껴 주었습니다. 우리 교회 사람들은 또한 제 앞에서 투명한 모습을 모여 주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그리스도 인들이 꼭 완벽한 사람들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서로를 학대하거나 상처주지 않으면서도 돈독한 그리스도 인 사이의 관계(결혼 혹은 가족 관계 등)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저는 돈독한 결혼 관계를 볼 수 있었고 다른 가족들은 서로 어떻게 교류하는 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저는 이런 경험들을 통해 하나님께 속한 남성들의 예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제가 어린 시절 받은 마음의 상처로 인해 모든 남자들에게 가졌던 믿음과는 정 반대였습니다.
이런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저는 성장하면서 여성에게 매력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제가 육체적으로 여성에게 끌렸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육체적으로는 남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남자들은 안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중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니면서 남자들과 데이트를 했습니다. 두 곳의 기독교 계통 대학교를 다녔는데 덕분에 좋은 성품을 가진 남자들과 데이트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고 저를 숙녀로 대해 주었습니다. 이 모든 남성들과의 긍정적인 관계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전히 남자들과 감정적인 관계를 맺지는 못했습니다. 제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여성들과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맺고 싶은 열망과 충동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여자 친구들과 우정을 쌓아 가면서 깊은 친밀함과 결속감을 느꼈습니다. 최소한 제 느낌은 그랬습니다.
저는 인생을 살면서 늘 깊은 공허와 외로움을 느껴야 했습니다. 진심으로 저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제 주위에 많이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러한 감정들은 어떤 면에서 정상적인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오직 하나님 만이 채우실 수 있는 빈 공간을 우리의 삶 가운데 만들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저의 공허가 유달리 깊었던 까닭은 성장하는 과정에서 부모님이 정당한 저의 감정적 필요들을 채워 주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를 사랑해 주고 삶의 공허를 채워 줄 사람을 늘 찾아 헤매야 했습니다. 비록 이러한 생각이나 열망이 무의식적이기는 했지만 저는 마음으로 늘 안전한 선택은 여성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제가 다른 여성들을 통해 존재감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1998년 크로스오버 사역에 참여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저는 여성들에게서 계속 실망을 느꼈고, 그런 현실에 부딪힐 때 마다 극심한 단절감은 배가되었습니다. 제가 맺었던 우정이 건전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혹은 성적이라는 이유로 파국을 맞을 때 마다 저는 극심한 거절감을 느꼈고, 그럴수록 저는 또다시 깊은 감정의 필요를 만족시켜 줄 다른 여성을 찾아, 지상에서 누군가에게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을 만족시켜 줄 여성을 찾아 헤맸습니다.
제가 다른 여성들과 맺었던 모든 관계가 다 동성애로 발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의존적인 감정의 요소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작가 로리 렌첼은 다른 사람과 함께하고 그의 돌봄을 받는 것이 개인적인 안정감을 느끼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믿게 될 때 감정 중독이 발생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때 돌봄을 받는다는 것은 인정이나 애정, 자신의 말을 들어 준다거나 자신과 함께 시간을 보내 주는 등의 매우 다양한 형태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여성 동성애의 형태 중에는 동성애적인 행동을 하지는 않지만 다른 여성과 감정적인 관계를 통해 만족감을 추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다른 여자 친구들과 육체적인 관계를 "실천하지" 않더라도 저는 이미 간음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는 알게 하셨습니다. 간음은 하나님의 자리에 다른 사람 혹은 다른 존재에 우선순위를 먼저 부여하려는 모든 행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우리 안에 만들어 놓으신 깊은 공허함은 오직 하나님만이 채워 주시려 만드신 공간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공허함은 늘 우리의 관심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베스 무어는 자신의 책 『해방 Breaking Free』에서 공허를 채우고자 하는 우리의 열망이 너무나 간절한 나머지 이러한 결핍을 만족시키는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순간 우리는 그 존재를 예배하고 싶은 주체할 수 없는 유혹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다른 여성과의 우정을 그토록 중시했던 까닭도 친밀감과 결속감에 대한 저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며, 이 세상에서 제가 누군가에게 중요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느낌을 만족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만족이 비록 일시적인 것이었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몇 명의 그리스도 인 여성들과 감정적이고 성적인 관계를 가진 후 저는 제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제게 (제가 구원받을 당시 주셨던 것과 같은) 회개라는 선물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번의 회개가 새로웠던 점은 깊은 자각과 슬픔이 함께 따라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거룩한 하나님의 슬픔이었습니다.) 저는 저 자신에게 역겨움을 느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매들에게 그리고 그 어떤 여성보다도 저를 더 사랑해 주신 하나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이 당시 저의 그리스도 인 친구 중 한 명 역시 동일한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제게 크로스오버 사역 단체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친구를 통해 저에게 두 번째로 크로스오버 사역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실 5년 전에 만났던 그리스도 인 상담자가 처음으로 그 사역에 대해 말해 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저는 너무 교만하여 동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문제(SSA, same sex attraction)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사역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5년이 지난 후에도 저는 여전히 동일한 문제로 씨름하고 있었고 그래서 겸손한 마음으로 그 사역단체에 전화를 했습니다.
이때 저는 이미 제 인생의 이러한 부분을 그리스도의 주권 앞에 올려드린 후였고, 그래서 이제는 다른 그리스도 인의 도움을 구하기 시작할 수 있었고, 아버지께서 제 인생을 변화시켜 주시도록 간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삶의 본질적인 문제들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고, 제가 왜 그런 방식으로 행동했는 지에 대한 원인도 알게 하셨습니다. 이 사역 단체를 통해 전능하신 하나님과 함께 치유의 여정을 따라가는 과정에는 물론 고통과 고난의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충분히 감내할 가치가 있는 고난이었습니다. 고통의 시간 끝에는 늘 하나님의 설명할 수도 형용할 수도 없는 평화가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제게 가르쳐 주신 중요한 내용 중 하나는 오직 성령님이 역사하실 때에만 제가 그분께 순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제 의지와 아버지의 뜻이 일치되도록 제게 능력을 부어 주셨습니니다. 성령님은 또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시며, 저는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그분의 딸이라는 사실을 제 존재 안에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저는 힘써 일해 이 새로운 정체성을 얻지도 않았으며 받을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다만 이 정체성은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저의 가치는 영원히 안전합니다(로마서 5:8). 하나님께서는 제 안에서 시작하신 착한 일을 충실히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빌립보서 1:6). 또한 제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바로 하나님이시며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십니다(빌립보서 2:13). 이러한 진리는 저를 너무나 자유롭고 겸손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무슨 일을 하든 그 주체는 제가 아니라 제 안에 계신 성삼위일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절망 가운데 끊임 없이 아버지께 부르짖고, 하나님의 모든 도를 따를 수 있는 의지를 주시도록 간구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신실하게 제 기도에 응답하시며 필요한 것들을 채워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쫓을 수 있는 의지와 열망을 제 안에 계속적으로 채워 주십니다.
그분의 놀라운 사랑이 끊임없이 저를 이끌어 그분을 더 알고 사랑하도록 만듭니다. 저는 하나님의 형상을 한 여성으로서 진정한 정체성 가운데 걷는 법을 배우는 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안에 그분을 알며, 그분께 순종하며, 평생토록 그분께 영광과 존귀를 올려 드리고싶은 쉼 없는 열망을 불어 넣으셨습니다(디모데후서 2:20-21). 구원은 값이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만, 하나님의 영광(거룩함)은 당신의 모든 것을 요구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저는 이제 이러한 대가를 지불할 의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원하는 모든 것이며 그분만이 제가 원하는 모든 것이 되십니다. 제가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입니다(빌립보서 3:8). 아멘!
MJ는 캔터키 랙싱턴에 위치한 앵글로-히스패닉 계통의 라로카 연합 감리 교회의 교인이다.
- 트랜스포밍 컨그리게이션
회복을 위한 심리치료가 필요하시다면
전문적으로 성과 동성애 문제를 다루는 "성중독심리연구소" 에 문의 하시기 바랍니다.
TEL: 070-8659-2479 www.sri.or.kr
참조: 웰스프링
놀라운 사랑
다섯 살 때 저는 트리니티 웨슬리안 교회 주일학교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죄를 사하여 주시도록 요청했습니다. 그 후로 우리 교회는 곧 저의 "가족"이나 다름 없었고, 제가 성장하는 내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 주었습니다. 교회 사람들은 제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었으며, 당시에 배웠던 말씀이 제 마음에 단단한 기초를 형성했습니다. 이때 형성된 기초야말로 제 삶의 진리를 세우는 본질적인 원천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동성애 문제에 직면했던 당시에도 저는 제 삶이 하나님의 의지와는 반대된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삶의 방식이 저의 허기진 마음에 매우 적절하고 순수하게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저는 당시의 삶이 죄인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예레미야 17:9).
저는 학대가 밥 먹듯 자연스러웠던 역기능 가정에서 성장했습니다. 어머니는 다섯 번이나 재혼을 하셨고, 새 아버지(새 남편)들이 우리 인생에 끼어들 때 마다, 그들은 우리에게 고통을 주고 떠나버렸습니다. 이러한 삶의 결과로 저는 어린 나이에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 대해 마음 깊숙이 몇 가지 결심을 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남자들이 제 어머니에게 했던 것처럼 저를 이용하거나 상처를 주지 못하게 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남자들과 어머니에게서 감정적으로 거리를 두며 무의식적으로 멀어졌던 것도 이 때 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어머니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했던 것은 어머니는 언제나 저의 감정적 필요 보다는 자신과 자녀들을 학대했던 아버지의 필요를 더 중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적인 학대를 경험하면서 저는 남자에 대해서도 마음으로 굳은 결심을 했습니다. "남자가 여자에게 원하는 것은 다만 성관계일 뿐이야. 남자들은 나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 지금은 이러한 말들이 비이성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상처 받고, 혼란스러웠던 아이의 어린 사고와 마음에는 너무나 당연한 말이었습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이러한 것들이 남자에 대한 저의 경험이자 현실이었습니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경험 때문에 불행히도 저는 매우 어린 나이에 감정적인 성숙을 멈추었습니다. 부모님은 저의 정당한 필요를 채워 주지 못하셨고, 저의 감정 발달은 초기에 성장을 멈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기본적인 신뢰와 안정감, 안전성과 사랑에 대한 필요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트리니티 웨슬리안 교회에 다니게 된 것은 매우 행운이었습니다. 이 교회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했고 하나님을 삶의 최우선으로 두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나눠 주었고 마치 자신의 가족처럼 저를 아껴 주었습니다. 우리 교회 사람들은 또한 제 앞에서 투명한 모습을 모여 주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그리스도 인들이 꼭 완벽한 사람들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서로를 학대하거나 상처주지 않으면서도 돈독한 그리스도 인 사이의 관계(결혼 혹은 가족 관계 등)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저는 돈독한 결혼 관계를 볼 수 있었고 다른 가족들은 서로 어떻게 교류하는 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저는 이런 경험들을 통해 하나님께 속한 남성들의 예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제가 어린 시절 받은 마음의 상처로 인해 모든 남자들에게 가졌던 믿음과는 정 반대였습니다.
이런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저는 성장하면서 여성에게 매력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제가 육체적으로 여성에게 끌렸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육체적으로는 남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남자들은 안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중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니면서 남자들과 데이트를 했습니다. 두 곳의 기독교 계통 대학교를 다녔는데 덕분에 좋은 성품을 가진 남자들과 데이트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고 저를 숙녀로 대해 주었습니다. 이 모든 남성들과의 긍정적인 관계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전히 남자들과 감정적인 관계를 맺지는 못했습니다. 제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여성들과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맺고 싶은 열망과 충동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여자 친구들과 우정을 쌓아 가면서 깊은 친밀함과 결속감을 느꼈습니다. 최소한 제 느낌은 그랬습니다.
저는 인생을 살면서 늘 깊은 공허와 외로움을 느껴야 했습니다. 진심으로 저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제 주위에 많이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러한 감정들은 어떤 면에서 정상적인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오직 하나님 만이 채우실 수 있는 빈 공간을 우리의 삶 가운데 만들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저의 공허가 유달리 깊었던 까닭은 성장하는 과정에서 부모님이 정당한 저의 감정적 필요들을 채워 주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를 사랑해 주고 삶의 공허를 채워 줄 사람을 늘 찾아 헤매야 했습니다. 비록 이러한 생각이나 열망이 무의식적이기는 했지만 저는 마음으로 늘 안전한 선택은 여성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제가 다른 여성들을 통해 존재감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1998년 크로스오버 사역에 참여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저는 여성들에게서 계속 실망을 느꼈고, 그런 현실에 부딪힐 때 마다 극심한 단절감은 배가되었습니다. 제가 맺었던 우정이 건전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혹은 성적이라는 이유로 파국을 맞을 때 마다 저는 극심한 거절감을 느꼈고, 그럴수록 저는 또다시 깊은 감정의 필요를 만족시켜 줄 다른 여성을 찾아, 지상에서 누군가에게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을 만족시켜 줄 여성을 찾아 헤맸습니다.
제가 다른 여성들과 맺었던 모든 관계가 다 동성애로 발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의존적인 감정의 요소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작가 로리 렌첼은 다른 사람과 함께하고 그의 돌봄을 받는 것이 개인적인 안정감을 느끼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믿게 될 때 감정 중독이 발생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때 돌봄을 받는다는 것은 인정이나 애정, 자신의 말을 들어 준다거나 자신과 함께 시간을 보내 주는 등의 매우 다양한 형태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여성 동성애의 형태 중에는 동성애적인 행동을 하지는 않지만 다른 여성과 감정적인 관계를 통해 만족감을 추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다른 여자 친구들과 육체적인 관계를 "실천하지" 않더라도 저는 이미 간음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는 알게 하셨습니다. 간음은 하나님의 자리에 다른 사람 혹은 다른 존재에 우선순위를 먼저 부여하려는 모든 행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우리 안에 만들어 놓으신 깊은 공허함은 오직 하나님만이 채워 주시려 만드신 공간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공허함은 늘 우리의 관심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베스 무어는 자신의 책 『해방 Breaking Free』에서 공허를 채우고자 하는 우리의 열망이 너무나 간절한 나머지 이러한 결핍을 만족시키는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순간 우리는 그 존재를 예배하고 싶은 주체할 수 없는 유혹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다른 여성과의 우정을 그토록 중시했던 까닭도 친밀감과 결속감에 대한 저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며, 이 세상에서 제가 누군가에게 중요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느낌을 만족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만족이 비록 일시적인 것이었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몇 명의 그리스도 인 여성들과 감정적이고 성적인 관계를 가진 후 저는 제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제게 (제가 구원받을 당시 주셨던 것과 같은) 회개라는 선물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번의 회개가 새로웠던 점은 깊은 자각과 슬픔이 함께 따라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거룩한 하나님의 슬픔이었습니다.) 저는 저 자신에게 역겨움을 느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매들에게 그리고 그 어떤 여성보다도 저를 더 사랑해 주신 하나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이 당시 저의 그리스도 인 친구 중 한 명 역시 동일한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제게 크로스오버 사역 단체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친구를 통해 저에게 두 번째로 크로스오버 사역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실 5년 전에 만났던 그리스도 인 상담자가 처음으로 그 사역에 대해 말해 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저는 너무 교만하여 동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문제(SSA, same sex attraction)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사역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5년이 지난 후에도 저는 여전히 동일한 문제로 씨름하고 있었고 그래서 겸손한 마음으로 그 사역단체에 전화를 했습니다.
이때 저는 이미 제 인생의 이러한 부분을 그리스도의 주권 앞에 올려드린 후였고, 그래서 이제는 다른 그리스도 인의 도움을 구하기 시작할 수 있었고, 아버지께서 제 인생을 변화시켜 주시도록 간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삶의 본질적인 문제들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고, 제가 왜 그런 방식으로 행동했는 지에 대한 원인도 알게 하셨습니다. 이 사역 단체를 통해 전능하신 하나님과 함께 치유의 여정을 따라가는 과정에는 물론 고통과 고난의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충분히 감내할 가치가 있는 고난이었습니다. 고통의 시간 끝에는 늘 하나님의 설명할 수도 형용할 수도 없는 평화가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제게 가르쳐 주신 중요한 내용 중 하나는 오직 성령님이 역사하실 때에만 제가 그분께 순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제 의지와 아버지의 뜻이 일치되도록 제게 능력을 부어 주셨습니니다. 성령님은 또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시며, 저는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그분의 딸이라는 사실을 제 존재 안에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저는 힘써 일해 이 새로운 정체성을 얻지도 않았으며 받을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다만 이 정체성은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저의 가치는 영원히 안전합니다(로마서 5:8). 하나님께서는 제 안에서 시작하신 착한 일을 충실히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빌립보서 1:6). 또한 제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바로 하나님이시며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십니다(빌립보서 2:13). 이러한 진리는 저를 너무나 자유롭고 겸손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무슨 일을 하든 그 주체는 제가 아니라 제 안에 계신 성삼위일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절망 가운데 끊임 없이 아버지께 부르짖고, 하나님의 모든 도를 따를 수 있는 의지를 주시도록 간구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신실하게 제 기도에 응답하시며 필요한 것들을 채워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쫓을 수 있는 의지와 열망을 제 안에 계속적으로 채워 주십니다.
그분의 놀라운 사랑이 끊임없이 저를 이끌어 그분을 더 알고 사랑하도록 만듭니다. 저는 하나님의 형상을 한 여성으로서 진정한 정체성 가운데 걷는 법을 배우는 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안에 그분을 알며, 그분께 순종하며, 평생토록 그분께 영광과 존귀를 올려 드리고싶은 쉼 없는 열망을 불어 넣으셨습니다(디모데후서 2:20-21). 구원은 값이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만, 하나님의 영광(거룩함)은 당신의 모든 것을 요구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저는 이제 이러한 대가를 지불할 의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원하는 모든 것이며 그분만이 제가 원하는 모든 것이 되십니다. 제가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입니다(빌립보서 3:8). 아멘!
MJ는 캔터키 랙싱턴에 위치한 앵글로-히스패닉 계통의 라로카 연합 감리 교회의 교인이다.
- 트랜스포밍 컨그리게이션
회복을 위한 심리치료가 필요하시다면
전문적으로 성과 동성애 문제를 다루는 "성중독심리연구소" 에 문의 하시기 바랍니다.
TEL: 070-8659-2479 www.sri.or.kr
참조: 웰스프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