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비 정글 리포트의 마리오 버그너 인터뷰
작성자: renwed
작성일: 2015-04-11 18:30
조회: 292
본 인터뷰 내용은 대학생 사역자들을 위한 계간지
아이비 정글 리포트(The Ivy Jungle Report, 2000년 겨울호 제 8권)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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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비: 오늘날 교회 안에는 동성애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습니다. 목사님의 견해를 말씀해 주실까요?
버그너: 예수님은 인간을 타락의 상태로부터 구원시키기 위해 돌아가셨으며 그 중 하나가 동성애입니다.
아이비: 그러면 목사님께서는 사람이 동성애자가 되는 것이 처음부터 태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여러 가지 환경적인 요인이나 또는 동성애적인 성향을 보이는 다양한 원인에 있다고 보십니까?
버그너: 사실 저는 동성애자(homosexual)란 단일 명사나 또는 동성애적 성향(homosexual orientation)과 같은 복합 명사의 사용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말들은 인간에 대한 성경의 인류학적인 설명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말들은 인간의 성에 대해 성경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유전적인 특징을 암시하는 표현입니다. 성경에는 남자와 여자의 동성애적인 행위만이 나타나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저는 성경에는 동성애적인 행위만이 언급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에는 두 가지 유형의 인간, 즉 남자와 여자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어떤 사람을 존재론적인 입장에서 동성애자로 규정하는 생물학적인 유전 인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다가 지금까지 동성애에 대한 생물학적 근거를 발견하려고 시도했던 모든 과학적인 연구가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실제 지금까지 계속된 그러한 모든 연구가 사실로 입증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저는 동성애적인 행위가 가정 환경이나 정신적인 충격, 학습에 의한 행동, 사회 환경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생물학적인 영향 등의 다양한 원인에 기인한다고 믿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지난 16년 동안 사역하면서 만나온 사람들을 보면 불안과 우울증 대한 의학적인 치료와 동성애로부터의 성공적인 탈출 사이에는 서로 상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제프리 새티노버(Jeffrey Satinover) 박사의 "동성애와 진실의 정치학(Homosexuality and the Politics of Truth) (Baker, 1996)"이란 책은 어떤 경우에 있어 우울증과 불안, 나아가 편집병에 대한 의학적인 치료는 동성애로 인한 노이로제 현상의 치료 효과와 상호 관련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이비: 이러한 것은 오늘날의 일반적인 견해가 아니라고 생각이 되는데요. 솔직히 말해, 동성애를 하나의 노이로제 현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다소 경멸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 않을까요?
버그너: 저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결코 경멸적인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지 자유로운 선택의 문제일 뿐이지요. 오늘날 대학가에 퍼져 있는 아주 잘못된 견해 가운데 하나는 동성애를 고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비기독교인들이 실시한 연구에 의하면 동성애에 대한 변화의 시도에 대한 성공 확률이 65퍼센트라고 합니다. (새티노버의 책을 참고하십시오.) 따라서 변화에 대한 소망을 경멸적인 것으로 단정짓는 것은 언어의 오용입니다.
아이비: 그러나 이러한 견해 때문에 오늘날 많은 복음주의 단체들이 대학가에서 반(反)동성애자 집단으로 간주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복음주의적인 교회들이 이러한 말을 듣는 것이 어느 정도는 타당하게 보입니다.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하라."는 말이 사실과 다르게 종종 죄와 죄인을 모두 미워하라는 말이 되고 습니다.
버그너: 캠퍼스 사역의 경우, 저는 캠퍼스 사역자들이 학생들에 대해 신실한 사랑과 함께 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의 온전한 구원으로 인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동성애에 빠져 있거나 포르노와 같은 그 밖의 다른 성적인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과연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반드시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것은 지금까지 교회 안에 있었던 동성애에 대한 그릇된 두 가지의 양극화된 접근 방식에 원인이 있습니다. 첫째는 동성애자에 대해 노골적인 비판과 거부 반응의 입장에 서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효율적인 목회적 돌봄을 통해 성적인 죄로부터의 구원에 대한 방법을 제시해 주지 못한 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동성애에 대해 소극적으로 관용적인 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복음적인 운동에는 성행위가 포함되는 동성애 부부관계부터 성행위가 포함되지 않는 동성끼리의 동거 관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동성애적인 파트너 관계에 대해 적극적으로 관대한 태도를 보이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과거에 동성애를 정죄한 자들과 마찬가지로 이것에 대해 일체 함구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동성애가 얼마든지 변화 가능하며, 예수님께서 우리를 동성애의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말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이처럼 극단적인 견해가 공존하고 있는 것은 교회가 동성애나 또는 그 밖의 다른 성적인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자들에게 효과적인 목회적 돌봄을 제공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이비: 그러면 목사님께서는 모든 동성애자들에 대한 치료가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그리고 만약에 그렇다면 그것이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말씀해 주시지요. 동성애자들이 동성애 대해 더 이상 성적인 매력을 느끼지 않게 된다는 의미인가요?
버그너: 저는 모든 동성애자들에 대한 치료가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다만 여러 가지 원인에 따라 변화의 진도와 치료 속도에 차이가 있을 수 있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 온전히 순종하고 그분의 가르침대로 살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그 밖의 두 가지 중요한 요소로는 동성애자 자신이 실제로 동성애적인 행위를 행했는지의 여부와 그가 도움을 구하는 시점의 나이입니다. 예를 들어, 동성애적인 생각과 감정을 실제 행동으로 옮긴 적이 없는 21살의 대학생에게는 치료 효과가 매우 빠르게 나타날 것입니다. 그것은 그(혹은 그녀)가 성에 대해 아직 고정 관념을 갖고 있지 않은 플라스틱과 같은 상태에 있어 예수님의 치료 효과가 보다 쉽게 형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성애의 경험이 많고 그 생활에 오래 동안 빠져 있는 35살 된 사람에게는 성적인 습관의 변화가 보다 더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35년 동안을 동성애적인 삶에 빠져 거의 절망적인 상태에 있는 55살 된 사람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의지가 더욱 강할 것이며, 따라서 변화를 받아들이려는 태도에 있어서도 35살 된 사람보다 20살의 청년에 더 가까울 것입니다. 그러나 똑같은 50대라도 20살 된 사람과 마찬가지로 결혼이나 가정에 대해서는 무관심할 수가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그러한 경우를 많이 보아 왔습니다.
완전한 치료 형태는 개인차와 동성애에 대한 개인의 심적 상태에 따라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동성애로 인한 상처의 골이 깊을수록 치료의 필요성이 보다 절박합니다. 그리고 남자의 경우에는 동성애로부터의 치료가 다른 남자들과의 성적인 이미지로 인해 야기되는 불안감으로부터의 자유와 굉장히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스트레스와 불안감에 빠질 때 또 다시 동성애적인 생각과 감정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가 자신의 그러한 영적 상태를 이해한다면 그것은 치료를 더욱 절실하게 추구하는 수단이 될 것입니다. 동성애에 대한 유혹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그 동안의 치료와 마음 가운데 동성애에 대한 이미지를 얼마나 많이 떨쳐 버렸느냐의 여부에 크게 좌우됩니다.
여자의 경우 동성애의 치료가 다른 여자들에 대한 심리적인 의지로부터의 독립과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런 사람은 자기가 다른 여자에게서 마음의 안정을 찾아야 할 필요성으로부터 벗어날 경우 스트레스를 받을지라도 다시 동성에 대한 매력에 다시 빠지지 않게 됩니다. 남녀 모두 압박감이나 불안감에 대한 치료가 동성애적인 사고와 감정으로부터 벗어나는데 커다란 기여를 합니다.
유혹에 대해 말한다면, 제가 지금까지 만난 동성애로부터 벗어난 사람들은 모두가 매우 비슷한 치료 경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치료 초기에 그들은 유혹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당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유혹이 자기들에게 접근해 오는 소리를 듣는 가운데 그것들이 더 이상 자기가 실천해야 할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 부질없고 달갑지 않은 생각과 감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면서, 그러한 유혹 가운데서도 자신의 영혼이 갈망하는 것들에 더욱 유의해서 귀를 기울이므로 그러한 것들의 지배로부터 성공적으로 벗어나게 됩니다.
동성애로부터 벗어나고 있는 남녀 모두에게 있어 유혹으로부터의 자유는 내적인 고통으로부터의 자유와 그리고 전심으로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자 하는 소망의 성장과 비례합니다. 인격적인 건강과 성화의 성숙은 마치 비행기의 두 날개와 같습니다. 공중을 날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모두 필요합니다.
아이비: 2000년 9월 4일자 "크리스챠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상처 입은 성적인 정체성을 치료해 주신다는 것을 확신해야 하지만, 그러한 치료에는 종종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심적인 노력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을 시사하는 사설을 실었습니다. 아마 그것은 목사님의 견해와도 일치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필자는 계속해서, "타락한 세상에서 모든 그리스도인 동성애자들에게 그들의 태도를 바꾸어야 할 것을 주장하는 것은 마치 모든 사람에게 그러한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강하게 부인하는 좌파적인 사고 만큼이나 무모한 짓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버그너: 저는 그 사설을 읽지 못했습니다만, 고통이 너무 심해 그대로 방치할 경우 사람에게 또 다른 고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성적인 문제를 해결하도록 권하는 것이 결코 무모한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C. S. 루이스(C. S. Lewis)는 "고통의 문제(The Problem of Pain)"란 자신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고통에 대한 책을 쓸 때가 아니라 고통을 직접 경험할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해 알고 싶을 것입니다. 상상하지 마십시오. 제가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굉장한 겁쟁이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저는 고통-불처럼 마음을 애타게 하는 염려와 사막처럼 막막하게 펼쳐지는 고독감,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상 생활의 반복되는 불행이나 눈 앞에 있는 것들을 보지 못하게 하는 무지근한 둔통, 혹은 갑자기 찾아와 일격에 마음을 넘어뜨리는 진절머리 나는 고통, 그러지 않아도 참기 힘든데 거기에다가 갑자기 더욱 심해지는 고통, 지금까지의 괴로움으로 반쯤 죽어 있는 사람을 마치 전갈처럼 아프게 쏘아 미칠 듯한 상황으로 몰아넣는 고통-에 대해 생각할 때 '기가 완전히 죽어 버립니다.' 아마 피할 수 있는 방법만 있다면, 저는 그것을 찾아 하수구 밑으로라도 기어 내려갈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여러분에게 저의 이러한 감정에 대해 말하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여러분도 그것들에 대해 이미 알고 있을 텐데 말입니다. 다시 말해 그것들은 여러분이 느끼는 고통에 대한 감정과 똑같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 고통이 우리에게 아픔을 주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은 우리를 아프게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이 말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입니다. 다만 저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히브리서 2:10)이란 기독교의 전통적인 교리가 거짓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할 뿐입니다. 저의 목적은 고통이 우리의 비위에 맞는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동성애로부터의 자유는 우리의 과거 육적인 자아가 죽으므로 우리로 예수님과 영적으로 하나가 되게 하는 구원의 방법 가운데 고난 당하는 법을 배우는 것을 말합니다. 저 역시 고통을 우리의 비위에 맞출 수 없다고 말한 루이스의 의견에 공감합니다.
아이비: 동성애에서 벗어나기 원하는 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모든 치료 방법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해온 미국심리학회는 최근 한 연구가가 인간은 동성애적 성향을 이성에 대한 사랑의 성향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견해를 뒷받침해 주는 새로운 사실들을 발표하는 일을 허락했습니다. 그로브 시티 대학의 워렌 트로크몰튼(Warren Throckmorton) 교수는 동성애적인 생활 습관에서 떠나기로 결심한 사람들에 대한 아홉 가지의 개별적인 연구 자료의 평가를 통해 "성적 정체성에 있어서의 변화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저는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다양한 생활 방식의 수용을 위한 훈련 프로그램이 실시되며, 차별 정책이 폐지되고 있는 시대에 그러한 발표가 허용되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버그너: 지난 50년 동안 많은 비기독교인 심리학자들은 동성애의 치료에 있어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었으며, 그들은 지금 미국심리학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로렌스 하터(Lawrence Hattere) 박사와 어빙 바이버(Irving Beiber) 박사 그리고 찰스 소카리데스(Charles Socarides) 박사와 같은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변화를 추구하는 동성애자들의 치료에 있어 중추적인 역할을 한 대단히 훌륭한 심리학자들입니다.
아이비: 목사님께서는 서두에서 동성애자란 명사가 성경에 없는 인류학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성애자란 말의 사용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심지어는 성이나 이성애란 용어조차도 성적인 감각이나 분위기를 약화시킨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것에 대해 목사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러한 말들이 성적 친밀감이라는 개념에서 실제 목적과 의미를 약화시키는 것이 사실입니까?
버그너: 저는 어떤 특별한 용어가 성적 친밀감의 목적과 의미를 약화시킨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면에서 저는 할리우드와 오늘날의 성적인 방임주의가 성을 비인간화 내지 유희화시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비: 제가 목사님과 인터뷰를 원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지금까지 목사님의 메시지를 들은 동성애자들로부터의 반응이 좋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어떤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으신지요?
버그너: 글쎄요, "반응이 좋다"는 말은 좀 과찬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저의 말에 귀를 잘 기울이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이유는 아마 제가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과 공감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제시할 때도 저와 다른 그들의 견해를 충분히 존중해 주지요. 저는 또 제가 초청받아 강연을 나갈 때도 대학교의 관계자들에게 공개적인 질의 답변 시간을 약속하며 동성애에 대한 저의 옹호적인 강의에 동성애자 집단의 참여를 확대시켜 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강연을 할 때마다 우리가 서로 다른 입장에 있지만 곡해된 견해 때문에 논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진술하므로 성에 대한 강연을 시작합니다. 모든 기독교인들이 프레드 펠프스(Fred Phelps, 동성애자들에 대한 반대 운동자로 널리 알려진 독립 교단 소속의 목사)와 같지는 않으니까요. 그리고 모든 동성애자들이 사람들에게 자기가 동성애자란 사실을 뻔뻔스럽게 드러내면서 다니거나 무질서하거나 한 해에 수 많은 섹스 파트너를 바꾸어 가며 상대하지도 않습니다. 저의 목적은 우리가 그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문화적인 차이를 극복하고 얼굴을 맞댄 채 그들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아이비: 목사님께서는 향후 10년 내의 대학 캠퍼스 안에서 동성애에 대한 반응이 어떠할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이것은 제가 법적인 측면이 아니라 문화적인 관점에서 질문하는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아주 짧은 기간 동안 동성애에 대한 일반인들의 견해가 극적일 정도로 많이 바뀌었는데, 이러한 것은 특히 대학생들 사이에 그렇습니다. 동성애에 대해 강하게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이 동성애자들이 그것으로 인해 부당한 피해를 당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대개의 사람들은 그들이 어떠한 형태의 차별 대우를 받아서도 안 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젊은 층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사회의 이해를 옹호하는 것에 대한 증오 범죄에 반대하는 것 이상의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실, 최근 대법원에서의 판결 이후 보이 스카우트에서는 더 이상 게이 지도자를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었으며 이제 그들은 자기들에 대한 후원이 고갈되어 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그들을 재정적으로 후원했던 많은 단체들도 후원을 끊을 것입니다.
버그너: 저는 지금 우리가 문화적으로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견뎌야 했던 것과 거의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오늘날 우리 사회가 동성애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법안을 통과시킬 경우 그것이 비록 불행한 일이긴 하지만, 그것은 서약을 통한 이성간의 결혼에 대한 기독교적인 측면에서의 보다 근본적인 기준을 마련해 줄 것입니다. 최근 출산 수업 중에 강사가 우리 부부에게 첫 아이를 언제 임신했는지 물었습니다. 우리는 신혼 여행 중에 했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그 전에는 아니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지요?" 하고 다시 물었습니다. 저는 "그 때 처음 섹스를 했기 때문이지요"라고 말했습니다. 강사는 마치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아니 뭐라고요! 결혼하기 전에는 손만 잡아보고, 키스만 했다는 말입니까?" 하고 묻더군요. 우리는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훌륭한 간증거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신앙을 오늘날의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 호소하는 식으로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선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 자체가 큰 간증이 되는 것입니다. 그 출산 강사는 지금 그리스도인이 되려는 찰나에 있습니다.
아이비: 그러면 목사님의 메시지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버그너: 전체적으로는 매우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 주제는 흙탕물과 같은 상태에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오늘날 복음적인 교회 안에는 동성애에 대해 소극적으로 인정하는 자들과 반대로 매우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복음주의자들 가운데는 동성애자들의 변화에 대해 매우 회의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복음서를 인용하면서 매우 그럴싸한 변을 늘어놓지만, 동성애에 대한 그들의 접근 방법에는 다분히 감정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그들이 동성애로부터 성공적으로 벗어난 사람들을 직접 볼 수 있는 경험이 극히 제한되어 있는 것에 원인이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아마 이것은 그들이 동성애는 물론이고 그 밖의 다른 성적인 문제로부터 치료된 사람들을 본 적이 없는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한 것에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그들이 감정에 이끌려 판단하는 것은 저들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치료하시는 예수님의 놀라운 사랑 안에서의 효과적인 사역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C. S. 루이스의 말을 인용하면, 그들은 친절보다도 훨씬 더 위대한 사랑을 전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비: 저는 게이 및 레즈비언 학생 그룹들과 협력하기 위해 공통점을 추구하고 있는 캠퍼스 사역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그들이 단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받는 불이익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동시에 AIDS 퇴치를 위한 기금 모금을 위해 게이 및 레즈비언 그룹들과 협력하는 기독교 단체들이 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이러한 운동들에 대해 잘 알고 계실 텐데요, 목사님께서는 그들을 지지하십니까?
버그너: 저는 사회적으로 유익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와도 제휴할 것을 권합니다. 그것이 바로 크리스찬인 우리의 사명이기 때문이지요. 다시 말해, 우리는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행사해야 합니다. 하지만 자신을 가리켜 "게이 크리스찬"이라고 말하는 자들이나 혹은 오늘날 실질적인 영지주의자와 다름 없는 자유주의적인 크리스찬들과 손잡고 일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합니다. 그것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과 손잡고 일하는 것으로 단호하게 거절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아이비: 마지막으로 목사님께서 오늘날의 광범위한 사역의 여러 다양한 조건들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는 캠퍼스 사역자들을 줄 수 있는 조언이 무엇이 있을까요? 그들에게서 목사님이 말씀하신 목회적 돌봄을 기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 그리고 우리가 대학생에게서 사람의 인생에 효과적인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사회 심리학적으로 성숙된 모습을 기대한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버그너: 저는 캠퍼스 사역자들이 대학생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품으로 얼마든지 인도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한번 예수님의 품 안에 안긴 자들은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리로 인도 받을 것입니다. 리딤드 라이브스(Redeemed Lives)에서는 대학생들이 동성애에서 벗어나도록 돕고 있습니다. 아직 유연하고 감수성이 강한 나이에 성에 대한 치유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회복을 위한 심리치료가 필요하시다면
전문적으로 성과 동성애 문제를 다루는 "성중독심리연구소" 에 문의 하시기 바랍니다.
TEL: 070-8659-2479 www.sri.or.kr
참조: 웰스프링
아이비 정글 리포트(The Ivy Jungle Report, 2000년 겨울호 제 8권)에서 발췌했습니다.
ⓒ 2000 The Ivy Jungle Network www.ivyjungle.org All Rights Reserved.
아이비: 오늘날 교회 안에는 동성애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습니다. 목사님의 견해를 말씀해 주실까요?
버그너: 예수님은 인간을 타락의 상태로부터 구원시키기 위해 돌아가셨으며 그 중 하나가 동성애입니다.
아이비: 그러면 목사님께서는 사람이 동성애자가 되는 것이 처음부터 태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여러 가지 환경적인 요인이나 또는 동성애적인 성향을 보이는 다양한 원인에 있다고 보십니까?
버그너: 사실 저는 동성애자(homosexual)란 단일 명사나 또는 동성애적 성향(homosexual orientation)과 같은 복합 명사의 사용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말들은 인간에 대한 성경의 인류학적인 설명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말들은 인간의 성에 대해 성경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유전적인 특징을 암시하는 표현입니다. 성경에는 남자와 여자의 동성애적인 행위만이 나타나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저는 성경에는 동성애적인 행위만이 언급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에는 두 가지 유형의 인간, 즉 남자와 여자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어떤 사람을 존재론적인 입장에서 동성애자로 규정하는 생물학적인 유전 인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다가 지금까지 동성애에 대한 생물학적 근거를 발견하려고 시도했던 모든 과학적인 연구가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실제 지금까지 계속된 그러한 모든 연구가 사실로 입증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저는 동성애적인 행위가 가정 환경이나 정신적인 충격, 학습에 의한 행동, 사회 환경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생물학적인 영향 등의 다양한 원인에 기인한다고 믿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지난 16년 동안 사역하면서 만나온 사람들을 보면 불안과 우울증 대한 의학적인 치료와 동성애로부터의 성공적인 탈출 사이에는 서로 상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제프리 새티노버(Jeffrey Satinover) 박사의 "동성애와 진실의 정치학(Homosexuality and the Politics of Truth) (Baker, 1996)"이란 책은 어떤 경우에 있어 우울증과 불안, 나아가 편집병에 대한 의학적인 치료는 동성애로 인한 노이로제 현상의 치료 효과와 상호 관련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이비: 이러한 것은 오늘날의 일반적인 견해가 아니라고 생각이 되는데요. 솔직히 말해, 동성애를 하나의 노이로제 현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다소 경멸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 않을까요?
버그너: 저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결코 경멸적인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지 자유로운 선택의 문제일 뿐이지요. 오늘날 대학가에 퍼져 있는 아주 잘못된 견해 가운데 하나는 동성애를 고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비기독교인들이 실시한 연구에 의하면 동성애에 대한 변화의 시도에 대한 성공 확률이 65퍼센트라고 합니다. (새티노버의 책을 참고하십시오.) 따라서 변화에 대한 소망을 경멸적인 것으로 단정짓는 것은 언어의 오용입니다.
아이비: 그러나 이러한 견해 때문에 오늘날 많은 복음주의 단체들이 대학가에서 반(反)동성애자 집단으로 간주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복음주의적인 교회들이 이러한 말을 듣는 것이 어느 정도는 타당하게 보입니다.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하라."는 말이 사실과 다르게 종종 죄와 죄인을 모두 미워하라는 말이 되고 습니다.
버그너: 캠퍼스 사역의 경우, 저는 캠퍼스 사역자들이 학생들에 대해 신실한 사랑과 함께 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의 온전한 구원으로 인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동성애에 빠져 있거나 포르노와 같은 그 밖의 다른 성적인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과연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반드시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것은 지금까지 교회 안에 있었던 동성애에 대한 그릇된 두 가지의 양극화된 접근 방식에 원인이 있습니다. 첫째는 동성애자에 대해 노골적인 비판과 거부 반응의 입장에 서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효율적인 목회적 돌봄을 통해 성적인 죄로부터의 구원에 대한 방법을 제시해 주지 못한 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동성애에 대해 소극적으로 관용적인 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복음적인 운동에는 성행위가 포함되는 동성애 부부관계부터 성행위가 포함되지 않는 동성끼리의 동거 관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동성애적인 파트너 관계에 대해 적극적으로 관대한 태도를 보이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과거에 동성애를 정죄한 자들과 마찬가지로 이것에 대해 일체 함구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동성애가 얼마든지 변화 가능하며, 예수님께서 우리를 동성애의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말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이처럼 극단적인 견해가 공존하고 있는 것은 교회가 동성애나 또는 그 밖의 다른 성적인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자들에게 효과적인 목회적 돌봄을 제공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이비: 그러면 목사님께서는 모든 동성애자들에 대한 치료가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그리고 만약에 그렇다면 그것이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말씀해 주시지요. 동성애자들이 동성애 대해 더 이상 성적인 매력을 느끼지 않게 된다는 의미인가요?
버그너: 저는 모든 동성애자들에 대한 치료가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다만 여러 가지 원인에 따라 변화의 진도와 치료 속도에 차이가 있을 수 있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 온전히 순종하고 그분의 가르침대로 살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그 밖의 두 가지 중요한 요소로는 동성애자 자신이 실제로 동성애적인 행위를 행했는지의 여부와 그가 도움을 구하는 시점의 나이입니다. 예를 들어, 동성애적인 생각과 감정을 실제 행동으로 옮긴 적이 없는 21살의 대학생에게는 치료 효과가 매우 빠르게 나타날 것입니다. 그것은 그(혹은 그녀)가 성에 대해 아직 고정 관념을 갖고 있지 않은 플라스틱과 같은 상태에 있어 예수님의 치료 효과가 보다 쉽게 형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성애의 경험이 많고 그 생활에 오래 동안 빠져 있는 35살 된 사람에게는 성적인 습관의 변화가 보다 더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35년 동안을 동성애적인 삶에 빠져 거의 절망적인 상태에 있는 55살 된 사람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의지가 더욱 강할 것이며, 따라서 변화를 받아들이려는 태도에 있어서도 35살 된 사람보다 20살의 청년에 더 가까울 것입니다. 그러나 똑같은 50대라도 20살 된 사람과 마찬가지로 결혼이나 가정에 대해서는 무관심할 수가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그러한 경우를 많이 보아 왔습니다.
완전한 치료 형태는 개인차와 동성애에 대한 개인의 심적 상태에 따라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동성애로 인한 상처의 골이 깊을수록 치료의 필요성이 보다 절박합니다. 그리고 남자의 경우에는 동성애로부터의 치료가 다른 남자들과의 성적인 이미지로 인해 야기되는 불안감으로부터의 자유와 굉장히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스트레스와 불안감에 빠질 때 또 다시 동성애적인 생각과 감정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가 자신의 그러한 영적 상태를 이해한다면 그것은 치료를 더욱 절실하게 추구하는 수단이 될 것입니다. 동성애에 대한 유혹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그 동안의 치료와 마음 가운데 동성애에 대한 이미지를 얼마나 많이 떨쳐 버렸느냐의 여부에 크게 좌우됩니다.
여자의 경우 동성애의 치료가 다른 여자들에 대한 심리적인 의지로부터의 독립과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런 사람은 자기가 다른 여자에게서 마음의 안정을 찾아야 할 필요성으로부터 벗어날 경우 스트레스를 받을지라도 다시 동성에 대한 매력에 다시 빠지지 않게 됩니다. 남녀 모두 압박감이나 불안감에 대한 치료가 동성애적인 사고와 감정으로부터 벗어나는데 커다란 기여를 합니다.
유혹에 대해 말한다면, 제가 지금까지 만난 동성애로부터 벗어난 사람들은 모두가 매우 비슷한 치료 경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치료 초기에 그들은 유혹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당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유혹이 자기들에게 접근해 오는 소리를 듣는 가운데 그것들이 더 이상 자기가 실천해야 할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 부질없고 달갑지 않은 생각과 감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면서, 그러한 유혹 가운데서도 자신의 영혼이 갈망하는 것들에 더욱 유의해서 귀를 기울이므로 그러한 것들의 지배로부터 성공적으로 벗어나게 됩니다.
동성애로부터 벗어나고 있는 남녀 모두에게 있어 유혹으로부터의 자유는 내적인 고통으로부터의 자유와 그리고 전심으로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자 하는 소망의 성장과 비례합니다. 인격적인 건강과 성화의 성숙은 마치 비행기의 두 날개와 같습니다. 공중을 날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모두 필요합니다.
아이비: 2000년 9월 4일자 "크리스챠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상처 입은 성적인 정체성을 치료해 주신다는 것을 확신해야 하지만, 그러한 치료에는 종종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심적인 노력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을 시사하는 사설을 실었습니다. 아마 그것은 목사님의 견해와도 일치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필자는 계속해서, "타락한 세상에서 모든 그리스도인 동성애자들에게 그들의 태도를 바꾸어야 할 것을 주장하는 것은 마치 모든 사람에게 그러한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강하게 부인하는 좌파적인 사고 만큼이나 무모한 짓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버그너: 저는 그 사설을 읽지 못했습니다만, 고통이 너무 심해 그대로 방치할 경우 사람에게 또 다른 고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성적인 문제를 해결하도록 권하는 것이 결코 무모한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C. S. 루이스(C. S. Lewis)는 "고통의 문제(The Problem of Pain)"란 자신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고통에 대한 책을 쓸 때가 아니라 고통을 직접 경험할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해 알고 싶을 것입니다. 상상하지 마십시오. 제가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굉장한 겁쟁이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저는 고통-불처럼 마음을 애타게 하는 염려와 사막처럼 막막하게 펼쳐지는 고독감,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상 생활의 반복되는 불행이나 눈 앞에 있는 것들을 보지 못하게 하는 무지근한 둔통, 혹은 갑자기 찾아와 일격에 마음을 넘어뜨리는 진절머리 나는 고통, 그러지 않아도 참기 힘든데 거기에다가 갑자기 더욱 심해지는 고통, 지금까지의 괴로움으로 반쯤 죽어 있는 사람을 마치 전갈처럼 아프게 쏘아 미칠 듯한 상황으로 몰아넣는 고통-에 대해 생각할 때 '기가 완전히 죽어 버립니다.' 아마 피할 수 있는 방법만 있다면, 저는 그것을 찾아 하수구 밑으로라도 기어 내려갈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여러분에게 저의 이러한 감정에 대해 말하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여러분도 그것들에 대해 이미 알고 있을 텐데 말입니다. 다시 말해 그것들은 여러분이 느끼는 고통에 대한 감정과 똑같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 고통이 우리에게 아픔을 주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은 우리를 아프게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이 말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입니다. 다만 저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히브리서 2:10)이란 기독교의 전통적인 교리가 거짓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할 뿐입니다. 저의 목적은 고통이 우리의 비위에 맞는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동성애로부터의 자유는 우리의 과거 육적인 자아가 죽으므로 우리로 예수님과 영적으로 하나가 되게 하는 구원의 방법 가운데 고난 당하는 법을 배우는 것을 말합니다. 저 역시 고통을 우리의 비위에 맞출 수 없다고 말한 루이스의 의견에 공감합니다.
아이비: 동성애에서 벗어나기 원하는 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모든 치료 방법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해온 미국심리학회는 최근 한 연구가가 인간은 동성애적 성향을 이성에 대한 사랑의 성향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견해를 뒷받침해 주는 새로운 사실들을 발표하는 일을 허락했습니다. 그로브 시티 대학의 워렌 트로크몰튼(Warren Throckmorton) 교수는 동성애적인 생활 습관에서 떠나기로 결심한 사람들에 대한 아홉 가지의 개별적인 연구 자료의 평가를 통해 "성적 정체성에 있어서의 변화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저는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다양한 생활 방식의 수용을 위한 훈련 프로그램이 실시되며, 차별 정책이 폐지되고 있는 시대에 그러한 발표가 허용되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버그너: 지난 50년 동안 많은 비기독교인 심리학자들은 동성애의 치료에 있어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었으며, 그들은 지금 미국심리학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로렌스 하터(Lawrence Hattere) 박사와 어빙 바이버(Irving Beiber) 박사 그리고 찰스 소카리데스(Charles Socarides) 박사와 같은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변화를 추구하는 동성애자들의 치료에 있어 중추적인 역할을 한 대단히 훌륭한 심리학자들입니다.
아이비: 목사님께서는 서두에서 동성애자란 명사가 성경에 없는 인류학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성애자란 말의 사용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심지어는 성이나 이성애란 용어조차도 성적인 감각이나 분위기를 약화시킨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것에 대해 목사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러한 말들이 성적 친밀감이라는 개념에서 실제 목적과 의미를 약화시키는 것이 사실입니까?
버그너: 저는 어떤 특별한 용어가 성적 친밀감의 목적과 의미를 약화시킨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면에서 저는 할리우드와 오늘날의 성적인 방임주의가 성을 비인간화 내지 유희화시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비: 제가 목사님과 인터뷰를 원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지금까지 목사님의 메시지를 들은 동성애자들로부터의 반응이 좋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어떤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으신지요?
버그너: 글쎄요, "반응이 좋다"는 말은 좀 과찬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저의 말에 귀를 잘 기울이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이유는 아마 제가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과 공감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제시할 때도 저와 다른 그들의 견해를 충분히 존중해 주지요. 저는 또 제가 초청받아 강연을 나갈 때도 대학교의 관계자들에게 공개적인 질의 답변 시간을 약속하며 동성애에 대한 저의 옹호적인 강의에 동성애자 집단의 참여를 확대시켜 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강연을 할 때마다 우리가 서로 다른 입장에 있지만 곡해된 견해 때문에 논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진술하므로 성에 대한 강연을 시작합니다. 모든 기독교인들이 프레드 펠프스(Fred Phelps, 동성애자들에 대한 반대 운동자로 널리 알려진 독립 교단 소속의 목사)와 같지는 않으니까요. 그리고 모든 동성애자들이 사람들에게 자기가 동성애자란 사실을 뻔뻔스럽게 드러내면서 다니거나 무질서하거나 한 해에 수 많은 섹스 파트너를 바꾸어 가며 상대하지도 않습니다. 저의 목적은 우리가 그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문화적인 차이를 극복하고 얼굴을 맞댄 채 그들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아이비: 목사님께서는 향후 10년 내의 대학 캠퍼스 안에서 동성애에 대한 반응이 어떠할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이것은 제가 법적인 측면이 아니라 문화적인 관점에서 질문하는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아주 짧은 기간 동안 동성애에 대한 일반인들의 견해가 극적일 정도로 많이 바뀌었는데, 이러한 것은 특히 대학생들 사이에 그렇습니다. 동성애에 대해 강하게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이 동성애자들이 그것으로 인해 부당한 피해를 당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대개의 사람들은 그들이 어떠한 형태의 차별 대우를 받아서도 안 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젊은 층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사회의 이해를 옹호하는 것에 대한 증오 범죄에 반대하는 것 이상의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실, 최근 대법원에서의 판결 이후 보이 스카우트에서는 더 이상 게이 지도자를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었으며 이제 그들은 자기들에 대한 후원이 고갈되어 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그들을 재정적으로 후원했던 많은 단체들도 후원을 끊을 것입니다.
버그너: 저는 지금 우리가 문화적으로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견뎌야 했던 것과 거의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오늘날 우리 사회가 동성애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법안을 통과시킬 경우 그것이 비록 불행한 일이긴 하지만, 그것은 서약을 통한 이성간의 결혼에 대한 기독교적인 측면에서의 보다 근본적인 기준을 마련해 줄 것입니다. 최근 출산 수업 중에 강사가 우리 부부에게 첫 아이를 언제 임신했는지 물었습니다. 우리는 신혼 여행 중에 했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그 전에는 아니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지요?" 하고 다시 물었습니다. 저는 "그 때 처음 섹스를 했기 때문이지요"라고 말했습니다. 강사는 마치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아니 뭐라고요! 결혼하기 전에는 손만 잡아보고, 키스만 했다는 말입니까?" 하고 묻더군요. 우리는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훌륭한 간증거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신앙을 오늘날의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 호소하는 식으로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선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 자체가 큰 간증이 되는 것입니다. 그 출산 강사는 지금 그리스도인이 되려는 찰나에 있습니다.
아이비: 그러면 목사님의 메시지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버그너: 전체적으로는 매우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 주제는 흙탕물과 같은 상태에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오늘날 복음적인 교회 안에는 동성애에 대해 소극적으로 인정하는 자들과 반대로 매우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복음주의자들 가운데는 동성애자들의 변화에 대해 매우 회의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복음서를 인용하면서 매우 그럴싸한 변을 늘어놓지만, 동성애에 대한 그들의 접근 방법에는 다분히 감정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그들이 동성애로부터 성공적으로 벗어난 사람들을 직접 볼 수 있는 경험이 극히 제한되어 있는 것에 원인이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아마 이것은 그들이 동성애는 물론이고 그 밖의 다른 성적인 문제로부터 치료된 사람들을 본 적이 없는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한 것에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그들이 감정에 이끌려 판단하는 것은 저들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치료하시는 예수님의 놀라운 사랑 안에서의 효과적인 사역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C. S. 루이스의 말을 인용하면, 그들은 친절보다도 훨씬 더 위대한 사랑을 전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비: 저는 게이 및 레즈비언 학생 그룹들과 협력하기 위해 공통점을 추구하고 있는 캠퍼스 사역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그들이 단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받는 불이익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동시에 AIDS 퇴치를 위한 기금 모금을 위해 게이 및 레즈비언 그룹들과 협력하는 기독교 단체들이 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이러한 운동들에 대해 잘 알고 계실 텐데요, 목사님께서는 그들을 지지하십니까?
버그너: 저는 사회적으로 유익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와도 제휴할 것을 권합니다. 그것이 바로 크리스찬인 우리의 사명이기 때문이지요. 다시 말해, 우리는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행사해야 합니다. 하지만 자신을 가리켜 "게이 크리스찬"이라고 말하는 자들이나 혹은 오늘날 실질적인 영지주의자와 다름 없는 자유주의적인 크리스찬들과 손잡고 일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합니다. 그것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과 손잡고 일하는 것으로 단호하게 거절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아이비: 마지막으로 목사님께서 오늘날의 광범위한 사역의 여러 다양한 조건들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는 캠퍼스 사역자들을 줄 수 있는 조언이 무엇이 있을까요? 그들에게서 목사님이 말씀하신 목회적 돌봄을 기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 그리고 우리가 대학생에게서 사람의 인생에 효과적인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사회 심리학적으로 성숙된 모습을 기대한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버그너: 저는 캠퍼스 사역자들이 대학생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품으로 얼마든지 인도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한번 예수님의 품 안에 안긴 자들은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리로 인도 받을 것입니다. 리딤드 라이브스(Redeemed Lives)에서는 대학생들이 동성애에서 벗어나도록 돕고 있습니다. 아직 유연하고 감수성이 강한 나이에 성에 대한 치유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회복을 위한 심리치료가 필요하시다면
전문적으로 성과 동성애 문제를 다루는 "성중독심리연구소" 에 문의 하시기 바랍니다.
TEL: 070-8659-2479 www.sri.or.kr
참조: 웰스프링